상의의 뒷길이는 73.5㎝이고, 품은 53.5㎝이며, 소매 길이는 58㎝이다.
유림 양복 상의의 겉감은 청회색 모직물(毛織物), 안감은 주2이다. 단추 5개로 여몄고, 스탠드 앤드 폴 칼라(stand and fall 주3가 달렸으며, 칼라 안쪽에는 보조 칼라를 달기 위한 고정용 주1 5개가 달려 있다. 앞길 양쪽 가슴에 덮개[flap]가 있는 패치 포켓(patch 주4이 달려 있고, 양쪽 허리에 엔벨로프 포켓(envelope 주5이 달려 있다.
왼쪽 안주머니 위에 황색 실로 유림의 호(號)인 ‘旦洲(단주)’를 수놓았다. 오른쪽 안주머니 위에는 ‘대구시 중앙통 시민양복점(市民洋服店)’이라는 주6이 붙어 있다. 이 라벨은 주7에 압인(壓印)한 것이다. 주8 안쪽에 양복점의 상호와 주소가 붉은색 도장으로 찍혀 있는 가죽 심지가 있다.
바지의 길이는 104㎝이고, 허리는 45㎝이다.
바지는 앞면 좌우에 각각 2개씩 주름(tuck)이 있고, 밑단이 4㎝ 접어 올려져 있다. 주9를 사용할 수 있도록 단추가 허리 밴드 안쪽 좌우에 2개씩 4개 달려 있다. 앞 중심 허리 단추는 단춧구멍이 아닌 단춧고리로 고정하게 되어 있다. 지퍼 대신 ‘PUSAN SIN-HUNG’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단추 5개로 여몄다. 바지 밑단, 옆선, 옆 주머니 양쪽의 주10 부분에 ‘ALL WOOL “ORIENTAL TEX” DONGYANG KOREA 500’이라는 글자가 제직(製織)된 주11가 있다.
유림 양복을 만든 대구시 중앙통의 ‘시민양복점’은 서문시장과 인접한, 오늘날의 대구 중앙대로(中央大路) 일대에 위치한 것으로 짐작된다. 유림 양복을 제작한 주12는 1950년 부산에서 설립된 ‘동양실업’(지금의 ‘태광산업’)이 1958년에 만든 첫 자체 양복지 브랜드였다. 동양실업의 설립자 이임용(李壬龍, 1921~1996)의 지시로 양복지 식서에 오리엔탈 텍스의 영문명을 새겨 넣었다고 전한다.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던 유물이 보존 처리를 위해 2017년 3월에 국립킹 슬롯연구소(현, 주13에 맡겨졌다. 국립킹 슬롯연구소의 킹 슬롯보존과학센터(현,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에서 2018년 4월부터 1년여 동안 보존 처리를 하였고, 이후 독립기념관에 소장하고 있다.
유림 양복은 주16 주17의 의복이며,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초기 국산 모직물의 현물로서의 가치와 그 시대상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유림 양복은 주14 유형의 주15이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에 ‘ 오락실 슬롯 머신 게임 신생활복(新生活服)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거쳐 1961년에 제정된 ‘ 표준간소복’과 같은 형태로 지속되어 우리나라 현대 남성복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유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