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바탕에 채색. 세로 33.4, 가로 29㎝. 슬롯 버그 현대화단의 대표적인 화가인 천경자의 그림들 중에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다. 천경자는 자서전적인 자신의 글에서 이 그림 속 주인공은 어릴 적 축제에서 본 여인을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했다. 즉 천경자는 길례언니를 “어린 시절, 어느 여름의 축제 날 노란 원피스에 하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여인이 스쳐 간 걸 보고, 그 인상이 너무 강렬하여 길례 언니의 스토리를 만들었고, 이름도 길례라고 붙여 본 것”이라 했다. 그러나 또 다른 글에서는 길례언니가 소록도 나병원의 간호사가 되어 고향을 떠난 소학교 선배로,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노란 원피스에 모자를 쓰고 하이힐을 신은 모습이었다고 했지만 대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길례언니」는 “금세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순결한 눈망울, 뾰로통한 처녀 특유의 표정”에 신비하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으로 묘사되었다. 슬롯 버그의 여인상 중에서도 가장 청신하고 맑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1970년대에 슬롯 버그는 뉴욕, 상파울루, 파리 등 해외전에 활발하게 참여하였고 세계 일주 여행을 다녀오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72년에는 월남 종군화가에 선정되어 전쟁기록화를 그리고 여행집을 출간하는 등 40대 말의 원숙기를 맞고 있었다. 「길례언니」는 1973년 현대화랑 초대 개인전에 출품되었으며 꽃과 여인을 주제로 한 슬롯 버그 양식의 정한(情恨)을 담은 그림들과 함께 전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