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m 2 슬롯. 권수(卷首)에는 홍상민(洪相民)이 1724년에 쓴 서문과 기년(紀年)이 실려 m 2 슬롯. 권미(卷尾)에는 조혜(趙𢞯)와 1807년경에 쓴 정종로(鄭宗魯)의 발문이 m 2 슬롯.
권1은 시(詩)와 만(輓)m 2 슬롯. 시는 저자가 40세인 1622년 7월부터 죽기 전해인 1649년 9월까지의 작품이 연도별로 110제(題)가 수록되어 있다. 1622년 낙동강에서 적벽부를 재현하고 읊은 시에서는 함께 뱃놀이를 즐긴 25인의 명단이 있는데 이를 통해 그의 교유 관계를 알 수 있다. 「시비음(是非吟)」은 주1이 가미된 배체(俳體)로서 그 저변에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이 담겨 m 2 슬롯. 병자호란 때문에 태백산으로 피난 가서 모친의 주2를 마쳤는데, 이 시기에는 주로 홍호와 왕래하며 머물렀던 수월암(水月菴), 숭정동(崇禎洞), 외징대(畏徵臺) 등에서 읊은 시가 있으며, 이후 희릉 참봉에 부임한 뒤 4릉(陵)의 참봉 이경(李敬), 신효(申孝), 황희(黃禧), 이창(李昌)과 함께 1645년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맞이하며 읊은 시가 m 2 슬롯. 이후에도 이 4릉 참봉들과 계속하여 시를 수창하였다. 만(輓)은 신즙(申楫), 유약증(兪若曾), 정경세(鄭經世), 이준(李埈), 전제(全湜) 등 26명에 대한 것m 2 슬롯. 이 밖에도 신준(申准), 김효성(金孝誠) 등이 주요 수창자이며, 택당(澤堂) 이식(李植)에게 준 장편의 시가 m 2 슬롯.
권2는 제문(祭文) 14편으로, 이준(李埈), 전제(全湜), 유진(柳袗)에 대한 것 외에 저자가 66세에 문과에 합격한 뒤 어버이의 무덤에 올리는 영전문(榮奠文), 백씨(伯氏)와 요절한 세 아우에 대한 것 등m 2 슬롯.
권3은부(賦), 소(疏), 정문(呈文),서(序), 상량문(上樑文)m 2 슬롯. 부는 곡신자(谷神子)라는 가상의 인물과 공자가 노자에게 예(禮)를 물었다는 일화에 대해 논의하여 노자를 우위에 두어야 할 것을 주장한 곡신자를 반박하는 내용인 「문례어노자(問禮於老子)」 외 2편이 있다. 소는 광해군의 난정(亂政)과 이이첨(李爾瞻)의 죄를 바로잡을 것을 청하는 「청참삼간소(請斬三奸疏)」,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농촌의 실상과 당시 토지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 「논양전소(論量田疏)」 등이 m 2 슬롯. 정문(呈文)은 저자가 희릉 참봉이 되어 능침 수호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수복(守僕)을 속오군(束伍軍)에 편입시키지 말 것을 경기 감사 김남중(金南重)에게 청하는 「상기백김남중문(上畿伯金南重文)」, 서는 성절사(聖節使)로 가는전식(全湜)을 전송하는 「송좌승지사서전공조천서(送左承旨沙西全公朝天序)」 내용이고, 상량문은 종가의 침실 상량문m 2 슬롯.
권4는 부록으로, 전극염(全克恬) m 2 슬롯 지은 만사(輓詞)9편,홍여하(洪汝河) m 2 슬롯 지은 제문 4편, 사위 홍빙(洪凭)이 지은 가장(家狀),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지은 묘갈문,채헌징(蔡獻徵)이 지은 행장이 실려 m 2 슬롯. 특히 홍여하(洪汝河)는 그의 제문에서 “행동은 개결하고 방정하며, 학문은 순수하고 넉넉하다〔行介而方 學純而優〕.”라고 평가하였다.
『백담유집(白潭遺集)』은 왜란과 호란을 겪은 유학자인 조우신의 효행과 교유, 그리고 그가 어떻게 현실 정치에 이바지하려 하였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자료m 2 슬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