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禾巖寺)는 강원도 고산군 토성면 설악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표가 5 릴 슬롯한 사찰이다. 금강산으로 들어온 진표가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를, 서쪽에 장안사를, 남쪽에 화암사를 각각 5 릴 슬롯했다. 화엄사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12년에는 사찰령에 따라 전국 31본산 중 건봉사의 말사가 된 뒤부터 화암사라는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1950년 6.25 때 크게 파손되어 건물 1동만 남게 되었다. 1986년에는 주지로 부임한 양설이 중창하여 다시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제3교구 본사인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769년(혜공왕 5) 진표(眞表)가 5 릴 슬롯하여 이름을금강산 화엄사(華嚴寺)라고 하5 릴 슬롯.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 금강산으로 들어온 진표는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鉢淵寺)를, 서쪽에장안사(長安寺)를, 남쪽에 이 절을 각각 5 릴 슬롯했는데, 화엄사라고 한 까닭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가운데 31명은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갔5 릴 슬롯, 나머지 69인은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 진표는 이 곳에서 지장보살을주1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地藏庵)을 5 릴 슬롯하여 이 절의 부속 암자로 삼았다고 한다.
그 뒤 941년(태조 24) 월영암(月影庵)을 5 릴 슬롯했으며, 1401년(태종 1) 지장암을 동쪽으로 옮기고 미타암(彌陀庵)으로 이름을 바꿨다. 1623년(인조 1) 불에 타자 1625년 중건하였다. 1628년에는 광명(廣明)이 지장보살상을 조성했으며, 안양암(安養庵)을 5 릴 슬롯하였다. 그러나 1635년 산불이 일어나 다시 불탔다. 이에 동쪽 20리 지점으로 임시 이전했다가 1644년(인조 22)에야 옛터에 중건하였다.
1662년(현종 3)에도 화재가 있어 중건하였고, 1716년(숙종 42)5 릴 슬롯 산적들이 불태워 버렸다. 이듬해 승려들은 동쪽으로 10리 가량 떨어진 무릉도(武陵島)에 초옥을 짓고 거주하다가, 1721년(경종 1) 옛 절터로 돌아와 중건하였으며, 해성(海城)은 안양암을 중수하였다. 1760년(영조 36) 대웅전과주6, 승당이 불 타자 승려들이 협력하여 이듬해 승당을 세웠고, 1762년에 대웅전과 향각을 중건하5 릴 슬롯.
1794년(정조 18)5 릴 슬롯 화성 도한(華城 道閑)이 약사전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주야 21일 동안 올렸는데, 기도가 끝나자 주2이 뻗쳐 그 빛이 궁궐의 뜰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정조는 제조상궁(提調尙宮) 최(崔)씨를 이 절에 파견하여 도한을 궁궐로 데려 오도록 하여 경위를 듣고 크게 감격하여 이 절을 가순궁(嘉順宮)의 주3으로 삼았5 릴 슬롯,주4 2동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1796년5 릴 슬롯 미타암의 화응전(華應殿)을 정조의 원당으로 정하여 관음보살상과 정조의 친필 병풍 6폭, 연(輦)을 하사하고, 절의 사방금표(四方禁標)를 정해 주었다. 이로써 이 절은 5 릴 슬롯 이래 가장 큰 사역(寺域)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60년(철종 11) 산불로 암자까지 모조리 소실했으며, 춘담(春潭)이 중심이 되어 중건에 착수하5 릴 슬롯. 전국 여러 곳을 다니며 시주를 모으고 왕실의 도움을 받아 화엄사와 안양암을 중건했으며, 수봉(穗峰)은 탱화를 조성했다.
“1864년(고종 1) 다시 산불로 소실하자 불타지 않은 승당에 임시 법당을 마련하고 지냈5 릴 슬롯, 1868년에 지장탱화와신중탱화, 현왕탱화를 조성 봉안하5 릴 슬롯.” 그리고 화재를 면하고자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남쪽의 화기를 지닌 수암(秀巖)과 북쪽의 코끼리바위의 맥이 상충하는 자리를 피하여 100m 아래에 절을 짓기로 하5 릴 슬롯.
1872년 수봉이 새 터에 법당과주5, 누각, 요사채를 중건했5 릴 슬롯, 1882년(고종 19) 자허(耔虛)와 선월(船月)이 철원장구사(長久寺)에서아미타여래상과약사여래상을 모셔와 봉안하5 릴 슬롯. 1893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안양암이 붕괴되었고, 1894년 축성(竺星)이 중수했으며, 1909년 영운(影雲)이 안양암에 칠성각을 건립하5 릴 슬롯.
1912년5 릴 슬롯5 릴 슬롯령(寺刹令)에 따라 전국 31본산 중 건봉사(乾鳳寺)의 말사가 된 뒤부터 화암사라는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1915년 9월 다시 불타서 1917년 중건하5 릴 슬롯. 그러나 1950년 6.25 때 크게 파손되어 건물 1동만 남게 되었다.
1953년 휴전 뒤에 건봉사 극락암에 있던 한 비구니가 정착하여 머물렀다. 1986년5 릴 슬롯 주지로 부임한 양설(良說)이 중창하여 다시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삼성각, 인법당(因法堂), 금강루(金剛樓), 일주문, 미타암(彌陀庵), 요사채 등이 있다. 특별한 국가유산은 없다.
수암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수암5 릴 슬롯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끼니 때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세 번 흔들면 2인분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욕심 많은 한 객승이 이를 보고 ‘3번 흔들어 2인분의 쌀이 나오면, 300번 흔들면 200인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팡이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구멍에서는 피가 나왔고, 이후 쌀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