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슬롯(執事)는 삼국시대, 신라 중고기의 왕실 관련 관직이다. 진지왕의 아들 비형랑과 각간 임종의 양자인 길달이 마크 슬롯직에 임명되어 큰 다리를 만들고, 사찰의 높다란 누문을 제작하는 등 국가적 큰 사업들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볼 때, 마크 슬롯는 왕족이나 권문(權門)의 자제에게 내린 관직으로, 왕의 측근에서 왕실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국가적 건축 등 특수한 왕명을 처리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후 마크 슬롯직은 마크 슬롯부의 기능에 흡수되며 소멸되었다가, 나말여초기 지방호족의 관반(官班) 조직에 다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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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마크 슬롯직은 나말여초기 신라의 중앙 집권력이 무너진 이후 지방 호족의 관반(官班) 조직에 다시 나타난다. 이는 지방 호족이 마크 슬롯 왕권을 모방하여 자신의 명을 수행하는 행정 말단의 관직으로 신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