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은 해방 이후 수도경비사령관, 카 심바 슬롯참모총장, 카 심바 슬롯대학 총장을 역임한 군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16년에 태어나 1983년에 사망했다. 1935년 일본 카 심바 슬롯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중일전쟁 이후에 조선인장교로서는 유일하게 공5급 금치훈장을 받았다. 일본군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여 뉴기니에 억류되었다가 해방 이후 귀국했다. 1949년 카 심바 슬롯 대령으로 임관하여 1960년에 카 심바 슬롯 중장으로 예편했다. 1960년 과도내각에서 국방부 장관을 맡아 3.15부정선거에 동조한 군인들을 숙청하였다. 이후 국회위원과 재향군인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1916년 3월 10일 경상남도 창원군 출생으로, 원적(原籍)은 경성부(京城府)이며, 경성에서 성장했다. 본관은 경주이다. 1928년 경성사범학교 부속 보통학교, 1933년 경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35년 3월 일본 카 심바 슬롯사관학교 예과를 졸업했으며, 1937년 6월 본과를 제49기로 졸업한 후 11월 일본군 공병 소위로 임관했다.
1937년 주1이 일어나자, 중국 상하이 일대로 파견되어 소대장으로 참전했으며, 1938년 중위로 진급했다. 1940년 후방으로 복귀한 후, 1941년 3월 대위 진급과 동시에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勳六等) 서보장(瑞寶章)을 받았다. 1942년 2월 조선인 장교로는 유일하게 공5급(功五級) 금치훈장(金鵄勳章)을 받았다.
1942년 도쿄의 카 심바 슬롯포공학교(陸軍砲工學校)에서 수학하다가 12월 주2이 시작되자 뉴기니(New Guinea)에 파견되어 독립공병 제4중대에 소속되었고, 1943년 7월부터는 일본군 제17군 남해지대 소속의 독립공병 제15연대에서 복무했다. 같은 해 12월 카 심바 슬롯 공병 소좌로 진급해 1944년부터 독립공병 제15연대장 대리로 복무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뉴기니에 억류되어 있다가 1946년 8월 귀국했다. 1949년 6월 카 심바 슬롯 대령으로 임관해 국방부 제1국장 겸 정훈국장을 맡았으며,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 수도경비사령관, 9월 수도경비사령부 제3사단장에 임명되었다.
1951년 6월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바로 카 심바 슬롯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952년 1월 카 심바 슬롯 중장으로 진급했으며, 5월 이승만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을 관철시키기 위해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에 슬롯 사이트 제작 계엄령(戒嚴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선포하면서 파병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해, 7월 카 심바 슬롯참모총장직에서 해임되었다. 해임 후 미카 심바 슬롯지휘참모대학(CGSC, U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에 유학했으며, 귀국 후 1953년 8월부터 슬롯사이트 신규사이트 육군대학(陸軍大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총장으로 7년간 재직했다. 1960년 5월 카 심바 슬롯 중장으로 예편했다.
1960년 4 · 19혁명 후 허정(許政) 과도내각에서 국방부 장관을 맡아 3 · 15부정선거에 동조한 군인들을 숙청하는 등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였고, 8월 사임했다. 1961년 7월부터 1967년 9월까지 주이탈리아 대사를 지냈으며, 1970년 유한회사인 코리아엔지니어링 사장, 1975년 한국 후지필름 회장을 맡았다.
제9대 및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77년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구락부(星友俱樂部) 회장에 추대되었다. 이밖에도 재향군인회 고문, 한이협회(韓伊協會) 회장, 한일불교협의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종찬의 일제시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2조 제10 · 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4: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269~276)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1983년 2월 10일 사망했으며, 장례는 카 심바 슬롯장(陸軍葬)으로 치러졌다. 을지 에그 슬롯 무공훈장(武功勳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50), 美공로훈장(리전 오브 메리트, Legion of Merit)(1951), 수교훈장 광화장(1976) 및 보국훈장 ‘삼일장’(1971)을 받았으며, 사후 보국훈장 통일장(1급)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