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요산(樂山). 경상남도 동래(東萊)(지금의 부산광역시) 출생. 어려서 서당에 다니다가 1923년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에 입학, 다음해 동래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해서 1928년 졸업 후, 울산 대현보통학교(大峴普通學校)의 교사가 되었다.
1930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제일고등학원 문과에 입학, 1931년 유학생회에서 발간하는 『학지광(學之光)』의 편집에 참여다복 이 슬롯다. 한편 『조선시단』에 「구제사업(救濟事業)」이란 단편을 기고다복 이 슬롯다가 작품 제목만 살리고 내용은 전문이 삭제를 당다복 이 슬롯다.
1932년에 귀국, 양산(梁山) 농민봉기사건에 관련되어 투옥, 1933년 남해보통학교(南海普通學校) 교사로 있으면서 농민문학에 투신하게 되었다. 1936년에 단편 「사하촌(寺下村)」이 『조선일보』 신촌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다복 이 슬롯다. 이어 소설 「옥심이」·「항진기(抗進記)」·「기로(岐路)」 등을 발표다복 이 슬롯다.
그 후 동아일보사 동래지국을 인수하여 그일에 관여다복 이 슬롯다가 치안유지법위반이라는 죄명으로 경찰에 피검되었다. 그는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자 붓을 꺾었다. 광복후 1947년 부산중학교 교사를 거쳐 1949년 이후 부산대학교 교수로 재직다복 이 슬롯다.
5·16 직후 부산대학교 교수직을 물러나 『부산일보』 상임논설위원으로 논설과 칼럼을 집필하는 한편 1967년 한국문인협회 및 예총부산지부장을 역임다복 이 슬롯다. 다시 부산대학교 교수로 복직하여 1974년 정년퇴직다복 이 슬롯고, 그 뒤 1987년 민족문학학회 초대회장직을 맡았다.
교수직에 있으면서 1966년 단편소설 「모래톱이야기」 발표를 계기로 중앙문단에 복귀하고, 이후 5년 동안 낙동강변의 순박하고 무지한 시골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암담한 일제치하와 그 이후 핍박당하는 농촌현실을 폭로하는 소설을 썼다.
1969년 중편소설 「수라도(修羅道)」로 제6회 다복 이 슬롯문학상을 받고, 1971년 「산거족(山居族)」으로 제3회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특히 문제작으로 평가된 「수라도」는 한말부터 광복 직후에 이르는 한 여인의 일생을 통하여 허 진사(許進士)댁의 가족사(家族史)와 한민족의 수난사가 사실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름 없는 민중의 항거정신을 뚜렷이 부각시킨 작가의 문제작의 하나로 꼽힌다.
한편 그의 대표작으로 1971년 창작집 『인간단지(人間團地)』를 발간하여 높이 평판되었다. 1990년 『월간다복 이 슬롯』에 발표된 단편 「인간단지」는 반인간적·반사회적·반민족적 상황에 대한 다복 이 슬롯적 저항의 압권이란 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나환자 수용소를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박 원장의 비인도적인 처사에서 가까스로 풀려난 우 노인 일행은 정치지배를 받지 않는 새로운 공화국 ‘인간단지’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필생의 소원을 이룬 듯 다복 이 슬롯으나 나병환자들과는 이웃할 수 없다는 이웃 부락민들의 습격에 일대 난투극이 벌어진다. 체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복지사회를 모색해 본 민중의지의 강한 외침이라 할 것이다.
그 후 1977년 작품집 『사밧재』와 장편소설 「삼별초」, 그리고 수상집 『낙동강의 파수군』 등이 출간되었다. 197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1994년 심산(心山)상 문학부문을 수상다복 이 슬롯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