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시정(時靜), 호는 정재(定齋). 곽승화(郭承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안현감 곽위(郭瑋)이고, 아버지는 사성 곽지번(郭之藩)이며, 어머니는 동지중추부사 허린(許磷)의 주1아들이 의병장주2
1546년(명종 1)에 주3에 합격하였고, 1556년 주4에 병과로 급제하여, 그뒤 승문원정자 · 영천군수를 지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570년(선조 3)에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1573년(선조 6)에 지평, 장령, 사간에 제수되었고, 1576년에는 의주목사, 그뒤 호조참의를 거쳐 1578년에는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이듬해 황해도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1581년에 제주목사에 제수되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청송부사(靑松府使)로 다시 제수되었다. 1585년에 남원부사로 제수된 뒤 얼마되지 않아 파직되었다.
무재(武才)를 겸비하여 국가에 위급한 일이 있으면 큰일을 맡길만하다 여겼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 곽재우가 의령에서 일어나 왜를 쳐서 큰 공을 세우니 사람들이 아버지의 기품을 닮았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