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경성미스터 플레이 슬롯. 시위연대 군미스터 플레이 슬롯는 1907년 해산되면서 이왕직(李王職) 소속의 양미스터 플레이 슬롯라는 이름으로 존속하였으나, 1915년 다시 양미스터 플레이 슬롯가 해산되면서 후신으로 생겨난 미스터 플레이 슬롯이다. 민간인에 의한 자영단체로 존속하였으나 활동은 괄목할만한 것이 못되었다.
즉, 각 학교의 운동회나 극장 등을 돌면서 연주하여 얻은 수입으로 유지해나갔다. 3·1운동 이후 시민위안과 미스터 플레이 슬롯기금 모집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서울 종로의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가졌다.
이를 계기로 민간인 유지회가 생겨 이왕실(李王室)에서 3000원, 식산은행(殖産銀行)과 조선총독부에서 약 7천원, 그밖에 미국인 선교사와 유지들에 의한 월 3000원 정도의 후원금을 얻게 되어 활기를 띠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후원이 끊기자 활동은 위축되었고, 대원들은 각 학교에 들어가 음악교육과 학교미스터 플레이 슬롯 육성에 힘을 기울였으며, 그 뒤 소수의 대원들에 의해 미스터 플레이 슬롯의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1930년대에 이르러 완전히 해산되었다.
이들이 사용하던 악기 중 일부는 휘문학교(徽文學校)에 기증되었고, 일부는 이왕실에 보관되어오다가 광복 후 서울시경찰미스터 플레이 슬롯에 기증되었다. 두드러진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우리나라의 초창기 서양식 미스터 플레이 슬롯의 보급과 육성에 끼친 공이 크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