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 의 슬롯 머신떡집은 서울의 대표 떡 골목인 슈 의 슬롯 머신동 떡전거리에 위치한 약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의 떡집이다. 1대 고이뻐가 상궁에게서 궁중 떡을 배워 1910년부터 원서동 일대에서 떡을 팔던 것에서 시작하였다. 고이뻐 이후 슈 의 슬롯 머신떡집은 슈 의 슬롯 머신시장 일대로 장소를 옮겨 가게를 마련하고 김인동, 이광순으로 전통이 이어졌으며, 현재 김승모가 이어받아 4대째 운영하고 있다.
과거 서울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말 중에 청계천을 경계로 남쪽에는 술이 북쪽에는 떡이 유명하다 하여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는 말이 있다. 이러하듯 슈 의 슬롯 머신동에 떡집이 생긴 것은 한일병합조약 과정에서 궁중개혁(궁중의 출입을 통제하고 궁중 내의 관리들을 대거 출궁시키거나 퇴거시킴)을 통해 궁궐을 나온 궁중 나인들이 창덕궁과 가까운 원서동에 거주하게 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고이뻐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성인이 된 후 서울로 올라와서 종로구 원서동에 거주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궁 주변에 터를 두고 생활하던 많은 상궁들과 교류하며 궁중 떡을 배웠다. 궁중 떡을 배운 고이뻐는 주문을 받아 집에서 조금씩 떡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차츰 원서동에서 슈 의 슬롯 머신동으로 행상을 다니면서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김인동은 고이뻐의 4녀로 태어나서 6·25 한국 전쟁 당시 어머니인 고이뻐와 딸 이광순과 함께 피난가는 도중에도 떡을 팔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의 권유로 1956년 슈 의 슬롯 머신시장에 슈 의 슬롯 머신떡집을 열었다. 1961년 고이뻐가 사망하면서 김인동은 떡집을 물려 받았다. 1960~1970년대 당시 시장에는 16개의 떡집이 한데 모여 있어서 슈 의 슬롯 머신동 떡전거리가 형성되었다.
이광순은 1980년 어머니인 김인동이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정하면서 슈 의 슬롯 머신떡집을 물려받게 되었다. 1980년 12월 한 방송사에서 슈 의 슬롯 머신떡집이 소개되면서 슈 의 슬롯 머신떡집과 슈 의 슬롯 머신동 떡전거리는 호황을 이루게 되었다. 1980~1990년대 전성기를 누린 슈 의 슬롯 머신떡집은 슈 의 슬롯 머신동 272번지가 재개발되면서 1993년에 슈 의 슬롯 머신동 9번지로 가게를 이전하여 현재의 위치에서 슈 의 슬롯 머신떡집 본점을 운영하고 있다. 더욱이 이때는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소득 증대에 맞물려 떡의 수요가 커지기 시작하였고, 일주일 중 3일을 밤을 새우며 일해야 할 정도로 최대의 호황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광순의 장남인 김승모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과 개인 사업을 하던 중 2005년 인사동 181-1번지에 슈 의 슬롯 머신떡집 최초의 분점인 인사동점을 개점하였다. 외국인 관광객과 주1이 주로 다니는 인사동 지역 특성을 살려 한 입 크기로 낱개 포장 판매하는 새로운 판매 방식을 도입하며 슈 의 슬롯 머신떡집을 운영해 오고 있다.
현재 슈 의 슬롯 머신떡집은 전통적인 떡 재료에서 벗어나 새로운 떡을 개발하고, 대중적인 가격의 다양한 떡을 만들기 위해 복잡한 공정을 최소한으로 단순화하는 작업 등 슈 의 슬롯 머신떡집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시대 요구에 맞춘 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슈 의 슬롯 머신떡집은 서울 사람들과 근현대를 고스란히 공유하며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 가는 오래된 떡 가게로 서울 사람들의 삶과 생활을 간직하고 있어, 2013년도에 2013-042호 서울 미래 주2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