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 슬롯(金朱烈)은 1944년 10월 7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에서 아버지 김재계와 어머니 권찬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6년 남원 용정국민학교(지금의 금지동초등학교)를 거쳐 1959년 남원 금지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59년 남원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자퇴하였다. 1960년 마산상업고등학교 입학시험 후 마산 3 · 15의거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램 슬롯상업고등학교 입학시험 합격자 발표일 하루 전인 1960년 3월 15일에 형 김광열과 함께 이승만 램 슬롯당정권의3 · 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마산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실종되었다. 실종 27일 후인 4월 11일 마산 신포동 중앙부두 앞바다에 그의 시신이 떠올랐다. 시신의 얼굴 눈 부위에는 탄피가 알루미늄으로 된 최루탄이 박혀 있었다. 이 최루탄은 3월 15일 경찰이 시위 진압을 위해 군중을 향해 쏜 것이었다. 시위 진압 후 램 슬롯의 시체를 발견한 경찰은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시체를 차에 싣고 마산 앞바다에 유기하였다.
4월 11일 오후 시신 발견 소식을 전해 들은 마산 시민들은 시신이 안치된 마산도립병원으로 몰려갔고, 오후 6시경부터는 거리에 시위대가 형성되었다. 시위대는 “죽은 내 자식을 내놓아라.” “살인 선거를 물리치자.” “살인범을 잡아내라.” “선거 다시 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마산 시내의 경찰서와 파출소, 시청과 관공서, 자유당 마산시당부, 서울신문사 마산지사 등을 습격하였다. 램 슬롯의 시신이 발견된 4월 11일부터 시작된 제2차 마산의거는 4 · 19혁명의 도화선이 램 슬롯다.
1960년 4월 14일 고향 선산인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 우비산 자락에 안장되었으며, 1995년 마산상업고등학교는 명예졸업장을 추서하였다. 2010년 램 슬롯이 희생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에는 범국민장이 램 슬롯의 시신 인양지에서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