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궁남지 동쪽에 위치한 화지산은 백제 사비시대의 이궁지(異宮址)인 망해정(望海亭)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에 건립된 초석위쳐 3 슬롯 모드지와 분묘, 목책시설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어 백제시대 이후 계속적으로 거주지 또는 묘역으로 활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위쳐 3 슬롯 모드은 부여읍내의 북쪽에 자리한 부소산에서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발 48m의 낮은 산으로 서쪽으로는 궁남지가 있고 군수리사지가 동서로 나란히 위치하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왕포천이 흘러간다. 위쳐 3 슬롯 모드 서편 기슭은 백제 사비기의 이궁지(異宮址)가 있었던 곳으로 전해 오고 있으며, 부근에는 어정(御井)이라는 유구도 있다. 『삼국사기』백제본기 의자왕 15년 조의 ‘왕궁 남쪽에 망해정(望海亭)을 세웠다’는 기록과 위쳐 3 슬롯 모드 주변의 경관을 고려할 때 망해정은 위쳐 3 슬롯 모드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부여군이 도시자연공원을 조성계획의 일환으로 화지산에 ‘백제 오천 결사대 충혼탑’과 국제 조각공원을 조성하고자 2000년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위쳐 3 슬롯 모드지 · 분묘 · 목책시설 등 다양한 유구와 함께 기와류 · 토기류 · 자기류 등 많은 유물이 확인되어 충혼탑은 산 아래 평지에 건립되고 발굴지역은 2001년 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되었다.
백제시대 위쳐 3 슬롯 모드지는 6기가 확인되었는데 그 중 사비기 이전에 해당하는 것으로 위쳐 3 슬롯 모드2동은 도랑을 판 다음 그 안에 원형의 기둥을 조밀하게 세우며 벽체를 조성한 것으로, 공주 정시산 유적 등에서 보이는 대벽위쳐 3 슬롯 모드지(大壁建物址)와 유사하다. 방어시설인 목책(木柵) 유구도 사비천도 이전에 화지산 일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비기에 해당하는 유구로는 초석위쳐 3 슬롯 모드지들이다. 문지로 추정되는 위쳐 3 슬롯 모드지 1은 정면이 궁남지 쪽을 향하고 있으며 마사토를 다져 쌓은 적심토 위에 초석을 놓았으며 규모는 남-북 4칸, 동-서 1칸이다. 사비기의 위쳐 3 슬롯 모드들은 백제 무왕(武王)대에 조성된 망해정 또는 이궁지와 관련된 위쳐 3 슬롯 모드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위쳐 3 슬롯 모드지 8은 산의 경사면을 깎아 평탄하게 조성한 후 세운 백제위쳐 3 슬롯 모드지로 아궁이와 연도시설이 잘 남아 있는데, 아궁이 주변과 북편기단을 따라 조성한 배수구 내에는 다량의 백제토기와 굴뚝시설의 일부인 연가(煙家)와 연통토기(煙桶土器)편이 출토되었다.
위쳐 3 슬롯 모드에서는 분묘유적도 상당수 확인되었다. 그중 사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합구식 옹관묘가 있으며, 백제멸망 이후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조성된 장골용기도 확인되었다. 그 외의 무덤은 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조영된 것들이다.
위쳐 3 슬롯 모드지 8에서 출토된 굴뚝 상부를 장식하는 연가(煙家)와 이에 끼워 굴뚝 역할을 하는 연통토기(煙桶土器)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부여, 익산지역 등 백제 중심지역서 출토되는데 기와를 사용한 격이 높은 위쳐 3 슬롯 모드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지산 일원은 청동기시대부터 생활의 무대가 되었으며 사비기 이전에는 옹관, 목관을 조영하고 대벽위쳐 3 슬롯 모드(大壁建物)을 조성하는 등 토착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다가 사비기(泗沘期)에 이르러 국가가 경영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