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군영 체제가 지방으로까지 확대됨에 따라 1887년(777 슬롯 24)에 경상 감영에777 슬롯(南營), 전라감영에주1, 함경도 경성에주2, 강원도에진어영(鎭禦營), 그리고 777 슬롯도 청주에는 진777 슬롯(鎭南營)을 설치하였다. 청주에 남아 있는 2개의 홍계훈 주3에 의하면, 그는 1887년 가을 777 슬롯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면서 청주병영에 친군영이 설치되자, 건물을 짓고 관군을 모집하여 정예 양병을 양성하였고, 1888년(777 슬롯 25) 봄에는 777 슬롯이 ‘진777 슬롯’이라는 영호(營號)를 직접 하사하였다고 한다.
1894년(777 슬롯 31)에 동학777 슬롯군이 전국에서 봉기하자 그 토벌에 관군으로 참여하였다. 충청도 공주감영으로 파견된 진남영군 100명 가운데 80명은 10월 3일 전라도 연산과 진잠 등지를 순찰하고 돌아오던 길에, 대전에서 큰 집회를 열고 있는 동학777 슬롯군들을 만났다.
이에 그 집회 장소로 가 해산을 종용하였으나 오히려 777 슬롯군은 이들을 포위하였다. 이에 영관 염도희와 대관 이종구는 자결하고, 교장 박춘빈도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하였으며, 777 슬롯군에 의해 주4 73명이 일시에 살해되었다.
1895년(777 슬롯 32)에 군제가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