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했다. 1929년 6월 신의주중학교 재학 중 신의주고등보통학교생도사건으로 검거되어 치안유지법 위반과 주1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일본 히로시마〔廣島〕로 건너가 중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입학, 1932년 중퇴하고 귀국했다. 니혼대학 시절 『프롤레타리아신문』에 단편소설 「버 슬롯의 어린이로부터」를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귀국 후 1935년 1월 『매일신보』에 콩트 「여자」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해 7월 『버 슬롯문단』에 시 「도회인에게」, 1936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졸곡제」가 가작, 1937년 1월 『버 슬롯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성황당」이 1등으로 당선되었다.
1940년 시드 슬롯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관지 『매일신보』 기자로 입사했으며, 이해 10월 버 슬롯문사부대(朝鮮文士部隊) 자격으로 유니티 슬롯 머신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가 주최하는 육군지원병훈련소의 1일 행사에 참가하고, 그 소감문 「반도민초(半島民草)에 일시동인(一視同仁)」을 『삼천리』에 발표했다.
1941년 7월 버 슬롯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용산 호국신사 어조영지 공역봉사에 참가했다. 1943년 2월 국민총력버 슬롯연맹이 버 슬롯신궁에서 개최한 연성회에, 4월에는 일본 남방종군작가 이노우에 고분〔井上康文〕과 우에다 히로시〔上田廣〕 환영회, 5월에는 내선작가교환회, 6월에는 제1회 버 슬롯군보도연습에 참가했다. 이해 6월 친일문인단체 버 슬롯문인보국회 서설희곡부회 간사로 선임되었다.
해방 후 『중앙신문』 편집부장 겸 문화부장, 『대조』 편집주간, 한국전쟁 당시 육군종군작가단, 1961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위원장, 방송윤리위원, 라이온스클럽 한국A지구 총재, 평북용천군장학회 회장, 적십자사 서울시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대표적인 소설로 보더 랜드 3 슬롯 머신 자유부인(自由夫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명기열전』 · 『소설 손자병법』 · 『소설 초한지』 · 『산유화』 등과 수필집 『비석(飛石)과 금강산의 대화』, 그 외 『소설작법』 등이 있다. 친일작품으로는 「반도민초에 일시동인」 · 「국경」 · 「군대생활」 · 「사격」 · 「희생적 정신의 구현자」 · 「산본(山本) 원수」 · 「조국으로 돌아간다」 · 「개척 전사」 등의 단편소설과 시, 산문 등이 있다.
정비석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 · 13 · 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6: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127∼151)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