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출신.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나자와(金澤)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에 누이가 있어 본적지를 강경으로 바꾸었다. 본업이 건설업이었으나 당시 동양타이틀을 최초로 획득한 강세철(康世哲) 선수와 알게 된 것이 연유가 되어 건설업자가 변신하여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매치메이커 또는 플레이 텍 슬롯모터로서 대활약을 하였다.
복싱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59년이다. 한국 최초의 동양극장의 사장 아들이며 공과대학출신인 그는 재력과 학력을 겸비한 인물인 동시에 영어와 일본어가 능숙하여 국제적인 플레이 텍 슬롯모터로서 활약하게 되었다. 1968년에 극동플레이 텍 슬롯모션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플레이 텍 슬롯모터로 맹활약을 하게 되었다.
특히, 1976년 10월 인천에서 개최된 홍수환(洪秀煥) 대 사모라의 세계권투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전을 개최하여 능력있는 플레이 텍 슬롯모터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1978년부터 그는 크게 약진하기 시작하였는데 김성준(金性俊)·김상현(金相賢) 선수를 세계챔피언으로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주로 멕시코·파나마·유럽·인도네시아 등 플레이 텍 슬롯복싱을 하는 나라는 어디든지 방문하여 그의 비즈니스 활동을 강화시켜 나갔다.
영어·일어·스페인어 등을 잘 구사하여 미국의 봅 애럼, 돈 킹, 남미의 슬레이만(WBC 회장), 맨도자(WBA 회장), 산체스, 마차도 등 굴지의 플레이 텍 슬롯모터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 여러 차례의 세계타이틀전을 성사시켰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김성준·김상현·김철호·김환진·장정구·이열우·백인철 등의 WBA·WBC 참피언과 전주도·권순천·이승훈·신희섭·문태진 등의 IBF 챔피언을 탄생시키는 쾌거를 이룩하여 한국 플레이 텍 슬롯복싱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의혹도 있었다. 1982년에는 태국의 가짜 복서사건으로 플레이 텍 슬롯모터 자격증을 한 차례 반납하였고, 1984년 9월 13일의 권순천의 제3차 방어상대자 카스트로사건은 한국권투위원회(KBC) 회장단(양정규 회장, 황종수·이익순 부회장)의 사퇴와 그의 전격 구속이라는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가짜선수사건 이후 자숙의 의미로 복싱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다가 1986년에 극동플레이 텍 슬롯모션을 월드플레이 텍 슬롯모션(전연호의 사위인 김종수가 사장을 맡음)으로 개명함과 동시에 회장으로 다시 등장하였다. 그는 다시는 이러한 실수가 없도록 국제기획실을 마련하여 세계각국의 선수들의 신상파악은 물론 각 선수의 장단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그의 부활은 월드체육관 소속 선수들, 장정구의 15차방어 승리와 신희섭·이승훈·백인철의 세계 도전 등의 쾌거를 이룩하게 하였다. 그가 사망한 뒤 극동플레이 텍 슬롯모션은 막내사위인 이승훈이 운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