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공간(公幹). 통례원봉례 효손(孝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흠(欽)이고, 아버지는 지중추위쳐 3 슬롯 모드(知中樞府事) 현보(賢輔)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충순위(忠順衛) 효성(孝誠)의 딸이다.
1528년(중종 23)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4년 식년 문과에 급제해 권지승문원정자에 임명되고, 곧 예문관에 선임되어 1536년까지 검열·대교·봉교 등 전임 사관을 위쳐 3 슬롯 모드하였다. 1537년 세자시강원설서·승정원주서를 위쳐 3 슬롯 모드했는데, 경상도관찰사인 아버지 현보의 관하 수령이 명사를 위한 지대물(支待物) 진상을 상찰(詳察)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장계를 보고하지 않았다고 파면되었다.
1539년 어머니의 상을 마친 뒤 예문관봉교에 복직되고, 곧 성균관전적에 승진한 뒤 예조좌랑·정언을 위쳐 3 슬롯 모드하였다. 1541년 11월 사헌부지평에 올랐고, 곧 병조정랑·경기도도사를 거쳐 1542년 황해도도사, 이듬해 부모 봉양을 위해 영천군수를 자원하였다.
1549년(명종 4) 종부시첨정으로 입조한 뒤 삼척부사로, 1550년 청송부사, 1554년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르면서 안동대도호부사가 되었다. 1557년 아버지의 상을 마치고 사헌부장령에 복직한 뒤 사간·집의를 거쳐, 1559년 특명으로 홍문관에 선임되어 교리·전한·직제학을 위쳐 3 슬롯 모드하였다.
그 해 11월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자하면서 승정원동부승지에 발탁, 이후 1561년까지 우부승지·예조참의·좌부승지·우승지·5위장을 지냈다. 1562년 상주목사, 1563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른 뒤 경주부윤으로 옳겼고, 1564년 경주부의 군액이 많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파직되위쳐 3 슬롯 모드.
1567년 영해부사, 1570년(선조 3) 공조참의, 곧 강원도관찰사에 체직되었으나, 1572년 병사(兵事)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파면되위쳐 3 슬롯 모드. 이후 명승지를 다니면서 유유자적하다가 죽위쳐 3 슬롯 모드. 성품이 과묵하고 겸손했으며, 효행과 학행이 뛰어났다. 20여 년간 외관으로서 선정을 베풀었고, 특히 영해부사 때는 유민 정착에 힘써 칭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