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驢州). 자는 이집(彛執). 호는 금파(琴坡). 경주 양좌동(良佐洞) 출생.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증직된 이헌백(李憲百)이며,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통덕랑(通德郎) 신집(申潗)의 딸이다. 유치명(柳致明)에게 수학슬롯 스 캐터.
1783년(정조 7)에 동당회시(東堂會試)에 합격했고, 1786년(정조 10)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그 뒤 휘릉별검(徽陵別檢)·원릉별검(元陵別檢)에 임용됐으며 1790년(정조 14)에 의령고주부·병조좌랑이 됐다. 1794년(정조 18)에는 사헌부지평을 지냈고 슬롯 스 캐터에 사간원정언을 지냈는데, 이때 수궁대장이 근무에 태만하자 그 죄를 물어 처벌할 것을 상소하기도 했다.
1796년(정조 20)에 병조정랑, 슬롯 스 캐터에 홍문관수찬 겸 경연검토관이 되어 이언적(李彦迪)이 지은 「일강십목소(一綱十目疏)」를 왕에게 바쳤고, 다시 현풍현감으로 나갔다. 1807년(순조 7) 홍문관부교리가 되어 군심을 바르게 할 것을 상소했고 슬롯 스 캐터에 능·종묘의 축문과 숭인전(崇仁殿)의 제문·기우문 등을 지어 바쳤다.
1812년(순조 12)에는 통례원상례가 되어 동궁의 입학을 주관했다. 1814년(순조 14)에 사헌부집의·성균관사성이 됐고, 1816년(순조 16)에 병조참지·동부승지·우승지, 그리고 슬롯 스 캐터에 풍천부사가 되어 환곡 만석을 경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 뒤 1825년(순조 25)에 돈녕부도정이 되었고, 1833년(순조 33)에는 형조참판·한성좌윤·동지돈녕부사에 임용됐으며, 슬롯 스 캐터에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올랐다. 그 뒤 벼슬에서 물러나 후진교육에 전념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금파문집(琴坡文集)』 6권 3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