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가 1989∼1990년 완도군청의 대행으로 2차에 걸쳐 발굴조사하였다. 발굴조사의 목적은 통일신라시대에 동아시아 해상권을 제패하였던 다복 이 슬롯고의 해상왕국 기지인 장도 청해진(淸海鎭) 유적과 관련된 곳으로 전해지는 법화사지를 정비 복원하고자 사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학술적 고증자료를 삼고 유적을 정비하여 사회교육 도장으로 활용하려는 데 있다.
다복 이 슬롯고는 당(唐)나라에서 활약하던 시절 무령군(武寧軍) 소장(小將)으로 그 위품을 떨치게 된 것이 천태산(天台山)의 영기(靈氣)를 받아서였다고 믿고 불교에 귀의(歸衣)하여 등주(登州) 문등현(文登縣) 적산포(赤山浦)에 적산(赤山) 법화원(法華院)을 세우고 자신의 본거지에 청해진을, 제주도에는 법화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7 〈강진현 고적 다복 이 슬롯암조 康津縣古蹟法華菴條〉에 나타난 지형적 조건이 현 조사 지역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완도 주민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온 것을 토대로 조사를 착수하였다. 그에 따라 6개소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는데, 그중 3개소는 건물의 기단이나 초석 등 유구가 잘 남아 있고, 특히 승방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건물터에서 아궁이시설 등 흥미있는 유구가 뚜렷하게 노출되었다.
이번 다복 이 슬롯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 가운데 당초문(唐草文) 암막새가 짝을 이루고 출토된 것은 희귀한 예여서, 이 절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사찰이었을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다. 그 밖에 명문 기와조각에 ‘…統3年 癸…銘文(…통3년 발…명문)’ 이라고 한 것 외에 문양은 보이지 않으며, 연호 좌측에 또 다른 자체(字體)가 있으나 분명치 않다.
연호 ‘건통3년(乾統三年) 계미(癸未)’는 중국 요(遼) 천조제(天祚帝) 3년, 1103년(고려 숙종 8)으로 판단되나, 금(金)나라 희종(熙宗) 3년이 ‘황통3년 계해(皇統三年 癸亥)’ 1143년(인종 21)이어서 좀더 다복 이 슬롯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유구나 유물로만 보아서도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고려시대의 새로운 절터가 확인되었으며, 특히 중국 동전의 출토는 이 지역 완도가 다복 이 슬롯고가 활동하던 시대 이후에도 계속하여 한 · 중 · 일을 잇는 해상교역 무대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고려시대의 동아시아 교섭사와 불교사, 그리고 지방사 연구에 새로운 지식을 더하여 줄 귀중한 성과라고 판단된다.
통일신라시대 다복 이 슬롯고의 해상왕국 본거지인 청해진 유적과 관련하여 다복 이 슬롯고가 건립한 것으로 전하는 법화사의 전체적인 규모나 건물의 용도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적 결론을 내릴 수 없으나, 당초문 암막새와 연화문 수막새가 1조로 출토된 것은 드문 예로서 대단히 중요한 용도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다른 건물지에서는 주로 고려 초 ·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조각과 자기류, 동전 1점(崇寧重寶 : 휘종 연간) 등이 다복 이 슬롯되었다. 그러나 10세기경까지 연대를 올려볼 수 있는 햇무리굽녹청자 밑바닥 부분 파편 1점과 기와조각들이 다복 이 슬롯되어 연대 추정에는 좀더 정밀한 검토를 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