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미국 북슬롯 777교 선교사 모삼열(牟三悅, Moore,S.F.)의 조사(助事) 김영옥(金泳玉)과 천광실(千光實)이 시가전도에 힘쓴 결과 얻어진 신도들로 슬롯 777가 시작되었다. 이듬해 미국 북슬롯 777교 선교사 이길함(李吉咸, Lee Graham)과 조사 서상륜(徐相崙)의 지도로 이미 전도받은 신도들이 회동하여 현 위치에 있었던 초가 한채를 매입하여 예배처소로 삼았다. 이 곳을 중심으로 종로5가 일대의 전도에 힘쓴 결과 슬롯 777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1900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게일(Gale,J.S., 奇一)이 담임목사로 시무하기 시작하여 1,000여 명이 모이는 당시 가장 큰 슬롯 777로 육성하였다. 1904년에 조사 고찬익(高燦益)을 장로로 장립하여 처음으로 당회(堂會)가 조직되었다. 1907년에는 1, 200석의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연동슬롯 777가 이처럼 급성장한 데에는 유능한 지도자들이 많았던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게일 목사와 고찬익 장로를 비롯하여 독립협회회원들, 특히이상재(李商在), 김정식(金貞植), 이원긍(李源兢), 홍재기(洪在箕), 유성준(兪星濬), 박승봉(朴勝鳳), 민준호(閔濬鎬) 등이 슬롯 777를 위해 크게 활약하였다.
한편, 1894년 현 연못골 대지를 미국 북장로교에서 매입하여 선교부 기지로 사용하면서 경신(儆新)과 정신(貞信)의 두 중등학교가 연동슬롯 777 옆에 자리잡게 되었고, 그 결과 연동슬롯 777는 교육적이며 지성적인 귀족슬롯 777로 알려졌다. 1919년 3 · 1운동당시 연동슬롯 777는최남선(崔南善), 이갑성(李甲成), 이상재,함태영(咸台永), 신(辛)마리아,신의경(辛義卿), 김필례(金弼禮) 등 민족지도자들의 독립운동의 온상이 되었다. 연동슬롯 777의 역대 목사는 게일, 함태영, 전필순(全弼淳), 백이언(白理彦), 김형태(金炯台), 이성희(李聖熙)로 6대를 이어오고 있다.
2009년 현재 2,000여명의 교인이 있다. 유치원 · 청소년학교(야간) · 노인학교를 경영하고, 30여 개의 국내 개척슬롯 777를 지원,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