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서(說書)는 슬롯 카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7품 관직이다. 홍문관의 박사(博士)를 고쳐 정원 1명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되었다. 한림(翰林)과 함께 청선(淸選)이라 할 정도로 입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관직이었다. 시강원에서 대사(大事)를 기록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였다.
1392년(태조 1)에 있었던 관제 제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슬롯 카관속 정7품으로 좌정자(左正字) 1명, 우정자(右正字) 1명, 모두 2명을 두었다. 세종대에는 겸직이 아닌실직(實職)으로 슬롯 카관속을 임명하였는데, 집현전이 제도적으로 정착하면서 집현전 학사가 서연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1456년(세조 2)에 집현전 학사들이 대거 포함된 일명 ‘ 사육신 사건’을 계기로 집현전이 혁파되었고, 이후 슬롯 카시강원이 다시 설치되었다.
슬롯 카시강원은주1이라고도 하는데, 관서로 설치된 것은 1466년(세조 12)경이슬롯 카. 이처럼 주2의 관원이 정비되는 과정에서 좌정자 · 우정자는 슬롯 카로 개칭되었으며, 인원도 2명에서 슬롯 카 1명으로 축소되어 일원화되었다. 슬롯 카는 홍문관의박사(博士)를 고친 것으로, 슬롯 카라는 직명은 경연의설경(說經)과 구분한 것이슬롯 카.
이러한 내용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되었다. 슬롯 카는 이후 겸슬롯 카(兼說書) 1명이 새롭게 겸직하게 되었으며, 이는 『 속대전(續大典)』에 법제화되슬롯 카. 이때에는 보덕 이하 슬롯 카까지 모두 겸직이 설치되어 인원이 늘어났으며, 산림직으로 시강원에 찬선(贊善) ·진선(進善) ·자의(諮議)가 설치되슬롯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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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카는 한림(翰林)과 함께 처음 관직을 할 때 선망의 대상이었고 주4이라고 하였다. 슬롯 카는 시강원의 고위직인 사 · 부 · 빈객이 합석하여 자신이 추천하는 후보자의 이름에 점을 찍는 권점(圈點)을 하여 3명의 후보자를 재추천하고 국왕이 최종 선발하는 방식으로 등용되슬롯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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