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송암(松庵). 인천광역시 강화군(구 경기도 강화군) 출신.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어의동보통학교(於義洞普通學校) 교사로 있다가 1913년 제생원 맹아부(濟生院盲啞部: 서울盲學校의 전신) 교사로 취임하여, 이때부터 맹인플레이 텍 슬롯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일어 플레이 텍 슬롯로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오다가 1920년부터 한글 플레이 텍 슬롯 연구에 착수하였다. 1923년 1월 비밀리에 조선어플레이 텍 슬롯연구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7년간의 연구를 거쳐 1926년 이른바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 불리는 한글 플레이 텍 슬롯를 완성하였다.
당시 일제의 검인정교과서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 한글 플레이 텍 슬롯로 『조선어독본(朝鮮語讀本)』을 플레이 텍 슬롯 출판하였으며, 이에 따라 맹인들에게도 민족의식이 더욱 고취되었다.
1935년 5월에 개최된 부면협의원(府面協議員)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한글플레이 텍 슬롯투표가 가능하게 되어 맹인들의 사회참여의 길이 확장되었다. 1931년부터 성경의 플레이 텍 슬롯원판(點字原板) 제작에 착수하여 1941년에 플레이 텍 슬롯로 된 『신약성서(新約聖書)』를 완성하였다.
1935년 제생원을 정년퇴직하고, 1936년 인천 영화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가 1939년에 사임플레이 텍 슬롯.
광복 후 제헌국회에서는 그가 창안한 한글플레이 텍 슬롯투표를 승인받았으며, 1950년 6 · 25전쟁으로 신약 플레이 텍 슬롯 아연판이 소실되자 다시 제작에 착수하여 1957년 『성경전서』의 점역(點譯)을 완성하였다.
또한 감리교 신자로서 서울 정동교회(貞洞敎會)와인천 내리교회(內里敎會)에 교적(敎籍)을 두고 맹인들을 전도플레이 텍 슬롯.
그가 마련한 교재용 플레이 텍 슬롯자료는 70여 종에 달하며, 사재(私財)를 기울여 지방 각 처에 통신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장애자교육에 무관심했던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에서 소외된 맹인들을 위해 교육에 전념하였으며, 한글 플레이 텍 슬롯를 창안하여 특수교육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등 평생을 장애자 교육에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