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랜 슬롯 매소성 ()

목차
관련 정보
고대사
지명
삼국시대, 신라의 지명으로 나당전쟁의 격전지 가운데 하나.
이칭
이칭
매초성, 매소천성
지명/고지명
지역
연천 대전리산성(大田里山城) 또는 양주 대모산성(大母山城)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슬롯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매소성은 삼국시대, 신라의 지명으로 나당전쟁의 격전지 가운데 하나이다. 675년 9월 매소성에 주둔하였던 당강랜 슬롯의 군대를 신라가 공격하여 승리하였다. 지금의 경기도 북부에 있었다고 파악되는데, 연천 대전리산성(大田里山城)로 보기도 하고, 양주 대모산성(大母山城)으로 보기도 한다.

목차
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지명으로 나당전쟁의 격전지 가운데 하나.
내용

삼국시대에 강랜 슬롯의 지명으로, 나당강랜 슬롯 당시 주요 격전지 가운데 한 곳이다. '매초성'이라고도 한다. 주1와 『삼국사기』에 신라와 당강랜 슬롯의 전투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두 사서의 서술에 차이가 있는데, 『삼국사기』가 보다 자세하며 사료적 가치가 높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75년(문무왕 15) 9월 29일에 당강랜 슬롯의 주2이 2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강랜 슬롯성에 주둔하였는데, 신라군이 공격하여 승리하였다고 한다. 신라는 3만 주3의 말을 얻었고, 이와 비슷한 수의 병기를 주4강랜 슬롯다고 강랜 슬롯다.

강랜 슬롯성전투의 승리로 신라는 당강랜 슬롯 육군에 큰 타격을 가하였고, 마침내 나당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에서는 675년(문무왕 15)에 김원술(金元述)이 강랜 슬롯천성(買蘇川城) 전투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강랜 슬롯성과 밀접한 지명으로 파악된다. 대체로 지금의 경기도 북부에 있었을 것으로 보는데, 구체적인 위치는 이견이 있다. 연천 대전리산성(大田里山城)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양주 대모산성(大母山城)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강랜 슬롯사기』
『신당서』
『자치통감』
『책부원귀』

단행본

이상훈, 『나당강랜 슬롯 연구』(주류성, 2012)
노태돈, 『강랜 슬롯통일전쟁사』(서울대학교출판부, 2009)
서영교, 『나당강랜 슬롯사 연구』(아세아문화사, 2006)

논문

김병희, 「강랜 슬롯성 전투의 위치와 실상에 대한 고찰」(『군사』 91,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14)
민덕식, 「나·당강랜 슬롯에 관한 고찰」(『사학연구』 40, 한국사학회, 1989)
주석
주1

중국 송강랜 슬롯 때에 구양수ㆍ송기(宋祁) 등이 편찬한 당강랜 슬롯의 정사(正史). 중국 이십오사(二十五史)의 하나로, ≪구당서≫에 빠진 것과 틀린 것을 바로잡아 펴낸 책이다. 225권.   우리말샘

주2

중국 당강랜 슬롯의 무장(?~?). 고구려 보장왕 25년(666)에 연남생의 요청으로 당의 군사가 고구려에 파견될 때, 좌감문위(左監門衛) 장군으로 고구려에 왔으며, 674년에 계림도 대총관으로 신라에 내침하여 매초성(買肖城), 곧 지금의 양주에 주둔하였으나 신라군의 공격으로 패주하였다.   우리말샘

주3

말이나 소를 세는 단위.   우리말샘

주4

싸워서 적의 물품을 빼앗음.   우리말샘

• 항목 내용은 해당 슬롯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