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는 1920년 동경에서 조직된 노동자·고학생의 친선단체인 동우회(同友會)에서 조직했는데 동경에 거주하는 한국인 노동자 3000여 명을 회원으로 하고 있었다. 국내의 순회크레이지 슬롯 머신을 목표로, 1920년 에 조직되어 있던 동경유학생들의 크레이지 슬롯 머신연구단체인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와 제휴하였다.
1921년 봄 이후에 준비를 마친 동우회와 극예술협회는 하기방학을 이용하여 국내 순회극단을 조직, 1921년 7월 7일 에서 8월 18일 까지 전국 주요 도시 순연(巡演)의 길에 나섰다. 이 일행은 동우회 간부인 임세희(林世熙)를 단장으로 하여 모두 22인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극예술협회의 회원이며, 이 단체의 동인이 아닌 이로는 마상규(馬湘圭)를 비롯한 몇 사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 극단의 연출은 극예술협회를 주도하던 김우진(金祐鎭)이 맡았는데, 그는 동우회의 취지에 찬동하여 국내 순회공연비 일체를 자담하기까지 하였다. 연기자는 유춘섭(柳春燮)·홍영후(洪永厚)·공원호(孔元昊)·조명희(趙明熙)·김석원(金錫元)·마상규·홍해성(洪海星)·김기진(金基鎭)·허일(許一) 등이었다.
국내 순연을 위한 프로그램은 크레이지 슬롯 머신 외에 홍영후·윤심덕(尹心悳)·한기주(韓琦柱) 등의 독주와 독창은 물론 강연까지 곁들여 다채롭게 꾸며졌으며, 상연작품은 번역극보다 당대의 절박한 현실문제를 취급한 창작극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여, 김우진이 번역한 던세니(Dunsany,L.)의 <찬란한 문 The Glittering Gate> 이외에 조명희의 창작극 <김영일(金英一)의 사>, 홍영후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최후의 악수>가 선정되었다.
1921년에는 부산·마산·김해·경주·대구·목포 등 지방도시를 순회공연하고, 7월말 서울의 단성사(團成社)에서 4회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서울 공연을 끝내고 다시 평양·진남포·원산에서 순회공연을 계속한 뒤 귀경하여 8월 18일 종로의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 회관에서 해단식을 거행하였다.
동우회는 그 회의 회관건립기금 모금을 위하여 국내 순회크레이지 슬롯 머신을 기획하였고, 이 기획은 극예술협회의 협찬을 얻어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 극예술협회가 동우회의 국내 순회크레이지 슬롯 머신에 호응한 이유는 고학생을 돕는다는 좋은 명분 이외에 그들 자신의 크레이지 슬롯 머신운동을 실천하려는 의도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우회순회크레이지 슬롯 머신단은 재일 유학생의 민족의식을 크레이지 슬롯 머신을 통해 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재일 유학생의 모임인 학우회의 순회강연, 갈돕회 크레이지 슬롯 머신의 국내순회에서 나타난, 드높아진 민족의식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