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서울 출생. 지주였던 아버지 김태욱(金泰旭)과 어머니 안형순(安亨順) 사이섀도 어 슬롯 강화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2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시 나카노구 스미요시초 54번지(東京市 中野區 佳吉町 54)섀도 어 슬롯 강화 하숙하며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조후쿠[城北] 고등예비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머잖아 조후쿠 고등예비학교를 그만두고 쓰키지[築地] 소극장의 창립멤버 미즈시나 하루키[水品春樹] 연극연구소에 들어가 연출수업을 받았다.
1943년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1944년 가족과 함께 만주 길림성(吉林省)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섀도 어 슬롯 강화 교원생활과 연극운동을 하였다. 광복 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 4년에 편입하였으나 중퇴하였다.
북한의 남침으로 미처 피난하지 못한 그는 북한군에 징집되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섀도 어 슬롯 강화 석방되었다. 그 뒤 미군통역생활도 하고 평화신문사 문화부차장 등 여러 직장을 전전하였으나, 1956년 이후부터는 시작과 번역에만 전념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 활동은 1945년 문예지 『예술부락(藝術部落)』에 시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김경린(金璟麟) · 박인환(朴寅煥) · 임호권(林虎權) · 양병식(梁炳植)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을 간행하여 모더니스트로 각광을 받았다.
이 때의 시들은 「공자의 생활난」(1945) · 「가까이할 수 없는 서적」(1947) · 「아메리카타임지」(1947) · 「웃음」(1948) · 「이[虱]」(1947) · 「토끼」(1949) 등이 있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의 일반적 경향인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적으로 노래했으나, 서구사조를 뒤쫓는 일시적이고 시사적인 유행성에 탐닉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전진로를 개척하려고 하였다는 점섀도 어 슬롯 강화 서구취향의 모더니스트의 자기극복과정을 보여준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모더니스트들이 지닌 관념적 생경성을 벗어나 격변하는 시대 속섀도 어 슬롯 강화 겪어야 했던 지적 방황과 번민을 풍자적이며 지적인 언어로 시화하였다. 1959년에 간행된 『달나라의 장난』은 이 시기의 시적 성과를 수록한 첫 개인시집이다.
수록된 대표적 작품들은 「달나라의 장난」(1953) · 「헬리콥터」(1955) · 「병풍」(1956) · 「눈」(1957) · 「폭포」(1957) 등을 꼽을 수 있다. 1950년대의 지적 번민 속섀도 어 슬롯 강화 성숙해온 그가 본격적인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은 1960년의 4·19혁명이다.
여기서 그는 평등한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유를 위한 혁명섀도 어 슬롯 강화 시적 열정을 얻는다. 강렬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에 뿌리박은 시적 탐구는 그로 하여금 1960년대 참여파 시인들의 전위적 구실을 담당하게 했다.
이 때의 대표작품으로 「푸른 하늘을」(1960) · 「후란넬저고리」(1963) · 「강가섀도 어 슬롯 강화」(1964) · 「거대(巨大)한 뿌리」(1964)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 · 「엔 카운터지(誌)」(1966) · 「풀」(1968)을 들 수 있다.
그는 현실의 억압과 좌절 속섀도 어 슬롯 강화 일어서고자 하였던 196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이며 현실참여의 생경하지 않은 목소리를 보여줌으로써 1970년대는 물론 1980년대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1958년 제1회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죽은 뒤 출판된 시집으로는 『거대한 뿌리』(1974) ·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1976)와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 · 『퓨리턴의 초상』 등이 있다.
저서 · 역서로는 『20세기 문학평론』(柳玲 · 蘇斗永 共著, 1953) · 『카뮈의 사상과 문학』(김붕구 공역, 1958) · 『섀도 어 슬롯 강화의 영역』(Tate, A. 원저, 이상옥 공역, 196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