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곡부(曲阜). 경기도 슈 의 캐릭터 슬롯 머신 출생. 공응규(孔應奎)의 둘째 아들이다. 김택영(金澤榮)으로부터 한학을 배워 시문에 능통하였고 성균관부제학을 역임하였다. 기업의 성패보다는 민족자본에 의한 향토개발로 일본인들의 자본침략을 극력 반대한 지사형 민족기업가이다.
손봉상(孫鳳祥) 등과 인삼품종 개량, 경작방법개선 등 삼포경영방법의 혁신을 주도하였다. 삼포경영으로 가산을 이룬 부호의 가문에서 태어나 1910년대 이래 슈 의 캐릭터 슬롯 머신에서 각종 회사를 창립하여 슈 의 캐릭터 슬롯 머신실업 발전에 기여하였다.
1912년 영신사(永信社) 설립 참여를 시작으로, 고려삼업주식회사(高麗蔘業株式會社), 한국 최초의 민족계 전기회사인 슈 의 캐릭터 슬롯 머신전기주식회사의 창립에 대주주로 참여, 취체역에 취임하였고, 1936년 서선합동 전기주식회사(西鮮合同電氣株式會社)에 강제 합병될 때까지 고수하였다.
1920년 김정호(金正浩)의 송고실업장(松高實業場)에 대주주로 참여, 취체역을 역임하였다. 1929년 슈 의 캐릭터 슬롯 머신양조주식회사를 설립, 대표취체역에 취임하였고, 1930년 송도고무공업주식회사 감사역, 1934년 춘포사(春圃社)를 창설하였다.
1936년 슈 의 캐릭터 슬롯 머신삼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취체역사장에 취임하였고, 특히 슈 의 캐릭터 슬롯 머신인삼의 판로개척을 위하여 슈 의 캐릭터 슬롯 머신인삼조합 설립에 참여, 제2대삼업조합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중국, 동남아시아 각지를 순회하면서 슈 의 캐릭터 슬롯 머신인삼의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등 다채로운 기업활동을 하였다.
1938년 슈 의 캐릭터 슬롯 머신상회(開城商會)를 창립하여 삼포경영 및 인삼판매업을 경영하였으나, 1930년대 이후에는 둘째 아들 공진항(孔鎭恒)에게 가업을 전담시키고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