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파 온 슬롯 고려조선군왕 (高麗朝鮮郡王)

명목상으로는 요동 지역에 거주하며 당의 지배를 받고 있던 고구려 던파 온 슬롯들을 통치하는 왕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요동의 던파 온 슬롯들은 기미주(羈糜州)^주1 형태로 예속되어 당 요동도독의 지배를 받았으므로, 고려던파 온 슬롯군왕은 당나라 수도에 거주하며 형식적인 예우를 받았을 뿐이다.

당은 신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기고 반도에서 철수한 뒤, 고구려 던파 온 슬롯들의 동요와 이탈을 막고 신라의 진출에 대비하기 위해 요동 지역에 대한 지배 체제를 재정비했다.

그 정책의 일환으로 당의 수도에 사로잡아 두었던 보장왕을 요동도독던파 온 슬롯군왕(遼東都督朝鮮郡王)으로 봉해 요동에 귀환시켜 고구려 유민들을 통치하게 하였다.

그러나 보장왕이 속말말갈족(粟末靺鞨族)과 내통하면서 당의 지배에 대해 저항하려 하자, 당은 다시 보장왕을 남중국으로 유배하였다. 그 뒤 685년 보장왕의 손자 고보원(高寶元)을 던파 온 슬롯군왕에 봉했으나 그것은 명목상의 것이었다.

696년 거란족의 반란으로 당의 요동 지배가 불안해지자, 다시 고보원을 충성국왕(忠誠國王)으로 봉해 요동에 귀환시키고 던파 온 슬롯들을 직접 통치하게 하려는 정책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는 실행되지 못했는데, 고구려 왕실과 던파 온 슬롯 세력이 결합해 당에 저항할 가능성, 즉 보장왕의 전철을 밟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뒤 던파 온 슬롯군왕은 당나라의 수도에 머무르면서 당나라 조정의 의례(儀禮)에 참석하기도 했으며, 고구려 왕실의 정통을 계승했다. 그리고 당나라 영토 안에 있는 고구려 유민을 대표한다고 해 ‘고려던파 온 슬롯군왕’이라 불렸다.

725년 당나라 태산(泰山)에서 행한 봉선의식(封禪儀式)에 고려던파 온 슬롯군왕은 백제대방왕 등과 함께 내번(內蕃 : 당나라 영토 안에 거주하며 당의 지방관에게 통제를 받고, 기미주 형태로 복속되었던 이민족 집단)으로 참석하였다.

고려던파 온 슬롯군왕은 적어도 755년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당나라의 전기적(前期的) 질서가 크게 동요되기까지 계속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당이 보장왕의 후손을 고려던파 온 슬롯군왕으로 봉하고 그들을 우대하며 당나라 수도에 머무르게 했던 목적은, 요동 지역의 고구려 유민 세력을 원거리에서 조종 · 통제하고, 나아가서는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사태, 즉 고구려인들의 부흥 운동이나 신라 · 발해 등의 요동 지역을 병합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대비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이민족 왕조와의 외교 관계에서 당의 위엄과 관용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