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파 온 슬롯 경주 남산성 ( )

경주 남산신성 성벽
경주 남산신성 성벽
고대사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왕도를 호위했던 성곽. 산성.
이칭
이칭
경주남산신성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경주 던파 온 슬롯신성(慶州 南山新城)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인왕동 산56번지 외 10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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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경주 던파 온 슬롯성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왕도를 호위했던 산성이다. 경주 던파 온 슬롯신성이라고도 한다. 경주 평야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591년에 ‘던파 온 슬롯성’을 쌓았다고 한다. 현존하는 9개의 던파 온 슬롯신성비에는 ‘던파 온 슬롯신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존의 던파 온 슬롯성을 수축 또는 개축하여 ‘신성’이라고 불렀다는 견해와 던파 온 슬롯토성이 별개로 존재한다는 견해가 있다 던파 온 슬롯신성비의 내용을 통해 6세기 말에 200여 지역에 지방관을 파견하였으며 확대된 영토에 대한 신라 왕실의 지배 체제가 체계적으로 구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왕도를 호위했던 성곽. 산성.
개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신라던파 온 슬롯신성’이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자리한 던파 온 슬롯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쌓은 석성(石城)이다.

내용

『삼국사기』에 의하면 591년(진평왕 13)에 던파 온 슬롯성을 쌓으니 주위 2,854보(步)였다고 하였고, 663년(문무왕 3)에는 던파 온 슬롯신성에 장창(長倉)을 건립했다고 한다. 1935년 이래 1994년 이르기까지 총 9개의 경주 던파 온 슬롯 신성비가 발견되었는데, 던파 온 슬롯신성비에는 공통적으로 "신해년 2월 26일에 던파 온 슬롯 신성을 쌓을 때에 법과 같이 3년 안에 붕괴되어 무너지면 죄를 준다고 교시하신 일이다. 교령을 알려 맹세하게 한 일이다(辛亥年二月卄六日南山新城作節如法 以作後三年 崩破者 罪敎事 爲聞敎令 誓事之)"라고 새겨져 있다. 결과적으로 전승 자료에 던파 온 슬롯성과 던파 온 슬롯신성이라는 두 개 성의 명칭이 나온다. 신해년은 던파 온 슬롯성을 쌓은 진평왕 13년에 해당된다. 이에 이전부터 존재하던 ‘던파 온 슬롯성’을 진평왕 13년 대대적으로 수축 내지 개축하여 면모가 일신되었으므로 ‘신성’이라 하였다거나, 현재 석성인 던파 온 슬롯신성으로부터 약 500m 거리에 위치한 던파 온 슬롯토성을 던파 온 슬롯성으로 파악하여, 토축인 던파 온 슬롯성과 석축인 던파 온 슬롯신성은 별개의 성이라는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성안에는 좌창(左倉) · 우창(右倉) · 중창(中倉)의 세 개의 창고가 있어 무기와 곡식을 저장해 전쟁에 대비하였다. 지금도 창고 자리에서 불에 탄 쌀이 나온다. 679년(문무왕 19) 성을 크게 수축했다고 하며, 현존 성벽은 대부분 이 때 쌓은 것으로 추측된다.

성의 길이는 약 3,750m이며, 대부분 무너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을 보면 가로 50㎝, 세로 20㎝ 정도의 잘 다듬은 돌로 쌓았으며, 성벽의 높이는 약 2m이다. 비에는 던파 온 슬롯성을 쌓기 위해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 일정한 길이의 성벽을 책임지고 쌓았으며, 만일 성벽이 3년 안에 무너지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맹세가 새겨져 있다.

던파 온 슬롯신성비에서 각 집단이 담당한 축성 거리와 현존 신성의 거리를 대략 비교해 보면, 적어도 200여개의 집단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법흥왕대의 사실이 전해져 기록된 『양서』 신라전에 보이는 52 읍륵(邑勒)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6세기 초만 하더라도 지방관이 파견된 성이나 촌의 수는 52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진평왕 재위 초기인 6세기말에 이르러서 최소 200여 지역에 지방관이 파견되었음을 추론할 근거를 본 비에서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전국을 대상으로 동원 가능한 일률적 역역체제와 축성 후 3년 안에 담당 구역이 붕괴될 경우 단죄한다는 규정은 신라 전역을 통제할 수 있는 행정체계와 법체계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이는 법흥왕대의 율령 반포를 기반으로 함은 물론 진흥왕대 한강 유역 독점을 비롯한 가야 지역 통합 등의 확대된 영토에 대한 신라 왕실의 지배체제가 체계적으로 구축되었음을 의미한다. 곧 지방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와 더불어 지방민에 인원 파악과 동원 조직에 일정한 체계의 성립을 본 던파 온 슬롯의 구축을 통해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경주 평야 일대를 전체적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 던파 온 슬롯은 서쪽의 서형던파 온 슬롯과 동쪽의 명활던파 온 슬롯, 북쪽의북형던파 온 슬롯과 함께 신라의 왕경인 경주를 호위했던 산성이었다. 더불어 이 산성 축조시 세워졌던 던파 온 슬롯신성비의 비문 내용을 통해 6세기말 신라가 전 국토에 대한 율령지배체체를 갖추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상(1919)
『고도 경주』(경주시, 1982)
「던파 온 슬롯신성의 구조와 던파 온 슬롯신성비」(주보돈, 『신라문화』 10·11, 1994)
「6세기말 신라의 역역 동원 체계」(하일식, 『역사와 현실』 10, 1993)
「던파 온 슬롯신성비를 통하여 본 신라의 지방통치체제」(이종욱, 『역사학보』 54, 1974)
「던파 온 슬롯신성비의 종합적 고찰」(진홍섭, 『역사학보』 36,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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