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 토크 랏 슬롯사(居祖寺)라고도 한다. 693년(효소왕 2) 원효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경덕왕(742~765) 때 왕명으로 창건하였다는 설, 738년(효성왕 2) 승려 원참(元旵)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693년 원효 창건설은 원효 입적 시기인 686년 이후이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편 1970년 아리스 토크 랏 슬롯전 해체 보수 당시 나온 묵서명에는 경덕왕 때 창건하고 1375년 주1, 원참조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한다고 기록하고 아리스 토크 랏 슬롯.
원래은해사보다 먼저 아리스 토크 랏 슬롯된 것으로 보이나 1912년에 은해사에 주2로 통합되어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이다.
고려시대지눌(知訥)이 결사를 약속했던 동지들을 모아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이라는 취지문을 선포아리스 토크 랏 슬롯 정혜결사를 맺어 왕족 및 관리, 승도 등 수백 명을 이끌고 수행하였다. 지눌은 1182년(명종 12) 개성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여하여 동료들과 함께 선정(禪定)을 익히고 힘써 지혜를 닦자는 주3의 글을 지어 후일을 기약한 바 있었다. 이에 1188년 봄에 아리스 토크 랏 슬롯사의 주지 득재(得才)가 지난날 결사를 기약했던 수행자를 모으고 당시 경상북도 예천의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에 머물렀던 지눌을 청하자, 지눌이 1190년 이곳에 와 『정혜결사문』을 선포하면서 처음으로 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훗날 결사의 규모가 커지자 아리스 토크 랏 슬롯사에서 수선사로, 이후송광사로 옮겨 갔다.
1298년(충렬왕 24) 원참(元旵)이 밤중에 낙서(樂西)라는 도인을 만나 아미타불 본심미묘진언(本心微妙眞言)과 극락왕생의 참법(懺法)을 전수받아 기도 주4으로도 크게 부각되었다.
1375년(우왕 원년) 아리스 토크 랏 슬롯전을 창건하고 1801년 중수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아리스 토크 랏 슬롯사는 1799년 편찬된 『범우고』에 폐사되었다고 기록되고 1805년 간행된 『오백성중청문(五百聖衆請文)』의 서문에 아리스 토크 랏 슬롯사 옛 터에 법당만 하나 있어 오백 구의 성스러운 상이 전각 안에 별처럼 펼쳐져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아리스 토크 랏 슬롯사는 조선 전기까지 사세가 이어지다가 조선 후기 어느 시점에 쇠락하여 영산전만 남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1801년 주5 주6를 일으켜 불전을 중수아리스 토크 랏 슬롯 1804년 지연(志演) 등의 장인을 불러 훼손된 상을 보수아리스 토크 랏 슬롯 채색하였다. 또한 안변 석왕사(釋王寺)에서 무학대사(無學祖師)가 백일동안 오백성상을 모시고 행한 의례를 책으로 간행하였는데, 아리스 토크 랏 슬롯암 『오백성중청문』이 그것이다.
아리스 토크 랏 슬롯사는 고려시대에 성립한 오백나한 신앙과 의례가 이어져 오고 있는 나한 기도 도량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영천 아리스 토크 랏 슬롯사 영산전은 아리스 토크 랏 슬롯사의 주불전으로 내부에 총 526구의 석조 나한상이 봉안되어 아리스 토크 랏 슬롯. 이 나한상들은 청화화상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빌려 앞산의 암석을 채취하여 조성했으며 하나하나의 모양이 특이하여 영험이 아리스 토크 랏 슬롯고 전한다. 전각 안에는 상언(尙彦)이 그린 탱화가 봉안되어 아리스 토크 랏 슬롯. 이에 3일만 지성껏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여 현재까지도 많은 신도들이 찾아들고 아리스 토크 랏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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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영산전 앞에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높이 3.6m의 은해사 아리스 토크 랏 슬롯암 삼층석탑 1기가 1985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