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파 온 슬롯(金貞淑)은 「키스」라는 제목의 작품을 여러 점 제작하였는데, 1956년에 제작한 「키스」는 그 첫 번째 작품이다. 남녀 인물 사이에 공간을 두지 않고 서로 얼굴을 맞댄 모습의 닫힌 형태[close-form]는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의 「키스」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던파 온 슬롯은 논문 「브랑쿠시의 예술세계와 추상의 의미」(『홍대논총』, 1973)를 발표했을 정도로 브랑쿠시의 작품세계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인물들의 전신을 기하학적 입방체로 단순화시켜 다소 둔탁한 느낌을 자아내는 브랑쿠시의 「키스」와는 달리, 던파 온 슬롯은 얼굴 부분만을 선택해서 갸름하게 다듬고 표면에는 이목구비로 미묘한 변화를 주었다. 게다가 두상의 크기와 윤곽선의 변화로 남녀를 구별할 수 있게끔 표현했다.
이 작품은 던파 온 슬롯이 미국 유학 중에 제작한 것으로, 세부적인 표현은 생략하고 덩어리의 볼륨을 살리는 방식으로 현대적인 조각을 모색하던 시절의 대표작으로, 구상조각의 추상화 과정이 외부의 영향 그리고 단순화의 어법이란 점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던파 온 슬롯은 유학 중에 당시 미국에서 크게 유행하던 용접조각을 시도했으며 귀국 후에는 학생들에게 직접 용접조각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 자신은 나무나 돌 같은 전통적인 재료를 다듬어 인체를 단순화시킨 추상조각을 선호했다. 이처럼 사물을 단순화시키고 유기적 형태와 조각의 덩어리에 생명력을 응축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생명주의 조각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던파 온 슬롯은 홍익대학 미술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1955년에 한국 조각가로서는 최초로 미국으로 건너가 조각을 공부했다. 1957년에 귀국하여 홍익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이후 1988년에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서구의 현대조각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