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보유적 제17호. 오션 스토리 슬롯루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정으로 꼽힌다. 오션 스토리 슬롯루에 올라서면 청류벽 아래 유유히 흐르는 맑은 대동강물과 강 건너로 펼쳐진 들판, 멀리 크고 작은 산들이 보이는 전경이 매우 아름답다. 외부에서 본 오션 스토리 슬롯루는 비단 자락을 펼쳐 놓은 듯한 맑고 푸른 물과 푸르른 녹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조화를 이루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이러한 풍광을 보고 고려시대의 유명한 시인 김황원(金黃元)은 시심(詩心)을 일으켜, “장성일면용용수 대야동두점점산(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긴 성벽기슭으로는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넓은 벌 동쪽에는 점점 산이 있네)”이라는 시를 지었지만 이 글귀 뒤로 더 이상의 시구가 떠오르지 않자 통곡하며 붓대를 꺾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션 스토리 슬롯루는 낮 경치도 좋지만 밝은 달이 뜬 밤 경치도 아름다워 “오션 스토리 슬롯완월(浮壁玩月: 오션 스토리 슬롯루의 달구경)”은 일찍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평양 금수산 모란봉의 동쪽 대동강가에 솟아 있는 청류벽 위의 오션 스토리 슬롯루는 고구려시대인 393년(광개토왕 3)에 영명사의 ‘영명루’로 세워졌다. 고려시대인 12세기 들어 ‘거울같이 맑고 푸른 물이 감돌아 흐르는 청류벽 위에 둥실 떠 있는 듯한 누정’이라는 의미에서 오션 스토리 슬롯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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