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사걸(士傑). 홍용(洪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덕보(洪德輔)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윤 홍심(洪深)이며, 어머니는 윤규(尹珪)의 딸이다. 좌의정 홍응(洪應)의 아우이다.
1453년(단종 원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세마(洗馬)에 등용되었다. 감찰을 슬롯 카 평택현감으로 나가 크게 선정을 베풀었다. 1479년(성종 10) 지평으로 내직에 들어왔고, 이어서 형조정랑·호조정랑·장령이 되었다가 형조참의에 제수되었다.
그 뒤 우승지·좌승지를 슬롯 카 1490년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494년 개성부유수로 전임하였다.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다가 한성부좌윤을 슬롯 카, 호조참판·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였고, 인물과 풍채가 준수하여 성종이 자주 명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우리나라의 인물로 자랑할 정도였다. 글씨에도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