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8일 버 슬롯공보부의 요청에 따라 동아대학교 박물관(현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바다를 향해 서쪽으로 전개되는 계곡 안쪽의 북쪽 암벽에 있으며, 계곡은 길이 100m, 최대 너비 50m 정도였다.
동혈(洞穴)은 입구가 공사 중 일부 파괴되었으므로 조사시의 규모는 길이 19.5m, 너비 4m, 높이 7.5m였으나, 원래의 길이는 25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암벽은 규사암굴(硅砂岩窟)로서 표면이 부드럽게 풍화되어 있었으며, 원시 바위그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너비 4m의 동굴 내에서는 0.1∼0.2m 길이의 순으로, 동굴 입구에서는 두께 0.8m 정도의 퇴적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조개껍질층[貝殼層] 두께의 평균을 0.5m로 잡는다면 11m×4m×0.5m의 아주 작은 규모의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깊이는 0.8m가 가장 깊고 그 밑에는 지하수가 솟아나며, 그 아래 암반까지는 아무런 유구나 유물도 없는 약 60㎝ 두께의 갈사분층(碣砂粉層)으로 되어 있다. 동굴 전정(前庭)의 경사각은 45°이므로 버 슬롯층의 발견이 어려웠다.
유물은 자연유물과 인공유물로 나뉜다. 자연유물은 굴조개(99.0%)와 소라 고둥(0.1%) 두 종류로 수렵을 겸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굴조개를 주식으로 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다. 이는 일반 해안지대에 형성된 조개더미인[貝塚人]의 습성과 같다고 생각된다.
인공유물은석기로는 뗀돌칼날[打製石刃] 2점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껍질을 벗기는데 버 슬롯한 듯하다. 가공한 패각류는 숟가락과 비슷한 형태의 것으로 이들을 단순한 실생활의 유물로 생각해도 좋을지 의문스럽다.
또한버 슬롯는 일종의민무늬버 슬롯로서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빚은 조질성(粗質性) 적갈색계통의 연질버 슬롯(軟質土器)이다. 바탕흙[胎土]에는 사립(砂粒)이 섞여 있고 때로는 흑회색을 띠고 있는 파편도 있었다. 기면(器面)의 처리는 적색진흙이 도장(塗裝)되어 있고, 몸체[器體]의 내부에는 솔같은 것으로 한번 쓴 자국도 있었다.
몸체의 형태는 바닥에 따로 만들어 붙인 불안전한 평평한 바닥[平底] 파편 7점이 있었고, 아가리[口緣部]는 모두 곧은아가리의 파편 뿐이었다. 이는 서해안 유적에서 출토되는 민무늬버 슬롯의 일종인 팽이버 슬롯[角形土器]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팽이버 슬롯의 아가리는 외반하든가 또는 이중으로 겹쳐진 진흙대[粘土帶]이거나 점문(點文)이 찍혀 있는데 비해, 이 버 슬롯는 그러한 사실과는 전혀 다르므로 선사버 슬롯 버 슬롯형식의 분류에 필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유물의 출토상황이 심히 교란되어 팽이버 슬롯편과 현대 와편(瓦片) 등이 혼재되어 있었으나 신라버 슬롯편이나 그 후대의 유물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유적은 소규모의 동혈주거지로서 단기간에 걸쳐 채집경제생활을 하며 민무늬버 슬롯를 사용하던 주민들의 생활 유적이었다. 그러나 평지에 구성된 넓은 선사시대 유적과는 달리, 동혈주거지라는 점에서 그 예가 드문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의 하나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