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2 슬롯 조덕승 ()

유교
인물
일제강점기 『흠재문고』를 저술한 유학자.
이칭
백거(伯據)
흠재(欽齋)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3년(고종 10)
사망 연도
1960년
본관
창녕(昌寧)
출생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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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흠재문고』를 저술한 유학자.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백거(伯據), 호는 흠재(欽齋). 아버지는 조석휴(曺錫休), 어머니는 탐진송씨(耽津宋氏) 송기순(宋基舜)의 딸이다. 어려서 조부 조의곤(曺毅坤)으로부터 학문을 시작m 2 슬롯고, 21세 때는 조부의 유명에 따라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m 2 슬롯다. 1897년 청성 가거리(靑城嘉苣里)로 최익현(崔益鉉)을 찾아가 조부의 묘갈명을 청m 2 슬롯으며, 1899년에는 『노사집(蘆沙集)』 발간에 참여m 2 슬롯으며 같은 해에 『동오유고(東塢遺稿)』를 편집하기도 m 2 슬롯다.

생애 및 활동사항

최익현·기우만의 의거(義擧)에 참여하지 못m 2 슬롯는데, 1906년 최익현의 순국과 1916년 기우만의 상을 당하자 향리의 문생들과 채약이동이계(採藥二同二契)를 맺어 선생의 상장(喪葬) 및 유집 간행에 힘썼다. 1909년 동향인으로 천민 출신인 의사(義士) 박도경(朴道京)이 순국하자 박도경의 명정(銘旌)을 쓰기도 m 2 슬롯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강학(講學)과 농사를 지으며 부모 봉양에 힘썼다. 조덕승은 사서(四書)의 훈고학적인 연구와 당시 학계에서 논란거리였던 명덕(明德)의 주리(主理)·주기(主氣)에 있어서 겸이기설(兼理氣說)을 주장하기도 m 2 슬롯다. 대표적인 제자로 정홍채(鄭泓采)가 있으며, 저서로 『흠재문고(欽齋文稿)』가 있다.

참고문헌

『흠재문고(欽齋文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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