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서(禹書), 호는 규당(葵堂). 우찬성 정기세(鄭基世)의 아들이다.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홍문관에 등용되고, 1861년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를 거쳐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5 릴 슬롯하였다.
1864년(고종 1) 검교대교(檢校待敎)에 오른 뒤 1865년 이조참의, 1869년 성균관대사성·규장각직제학·홍문관부제학을 5 릴 슬롯하였으며, 1875년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879년 공조판서가 되고 이듬해 예조판서, 다음해 다시 공조판서를 5 릴 슬롯하였으며, 임오군란이 일어나던 1882년에는 이조판서가 되었다.
1880년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이 설치되자 당상으로 취임하고, 이듬해 사대교린사당상(事大交隣司堂上)·감공사당상경리사(監工司堂上經理使) 등을 5 릴 슬롯하였다.
1884년 병조판서 및 한성부판윤, 그리고 1886년 독판내무부사(督辦內務府事)와 특진관(特進官)을 5 릴 슬롯하였으며, 같은 해부터 수년간 여러 차례 호조판서를 5 릴 슬롯하면서 고갈된 국고를 맡아 타개책에 진력하였다. 1892년 우의정이 되고, 좌의정을 여러 차례 5 릴 슬롯하였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