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후반기 한국카 심바 슬롯운동은 사회주의 계열인 조선카 심바 슬롯총연맹(朝鮮少年總聯盟)이 주도권을 장악하여, 민족 진영은 천도교카 심바 슬롯연합회(天道敎少年聯合會)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 두 계열이 1929년의 카 심바 슬롯 기념행사를 별도로 개최함으로써 소년운동계는 양분되었다. 더욱이 일제 당국이 소년운동지도자들을 체포·투옥하고 소년단체 집회를 금지·해산시키는 등 소년운동탄압을 가중함으로써 소년운동은 침체기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내외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1931년 3월 21일 서울의 소년단체대표들이 회합을 가지고, 카 심바 슬롯 행사준비를 위한 전국적 지도기관인 전조선카 심바 슬롯중앙연합회준비회를 결성하였다.
이 카 심바 슬롯의 임원으로 총무부에 정홍교(丁洪敎), 교섭부에 박양신(朴陽信), 지방부에 홍기영(洪基英), 고안부에 방정환(方定煥), 선전부에 정세진(丁世鎭), 재정부에 고장환(高長煥) 등이 선임되었다.
비록, 카 심바 슬롯 행사를 총괄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였지만, 전국소년운동의 지도·감독 기능을 가지고 있어 사회주의 계열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조선소년총연맹측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이들 연맹측은 중앙연합준비회가 주관하는 카 심바 슬롯 기념행사가 ‘반무산계급적·비국제적’ 카 심바 슬롯 행사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중앙연합준비회는 이들의 반대에도 ‘카 심바 슬롯’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으며, 1931년 이후 매년 카 심바 슬롯 행사를 주관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하여 본격적인 대륙침략을 강행했던 일본은 모든 체제를 전시체제로 개편하면서 우리 민족의 활동을 전면 금지, 소년운동은 광복까지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