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명(景明), 호는 온계(溫溪). 선산 이정(李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사 이계양(李繼陽)이고, 아버지는 식진사 이식(李埴)이며, 어머니는 사정(司正) 박치(朴緇)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형이다.
어려서 작은아버지 이우(李堣)에게 글을 배워 1525년(중종 20)에 진사가 슬롯 스 캐터고, 152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533년에 사간·정언 등을 거쳐 1541년 직제학에 올랐으며, 이어 경상도진휼경차관(慶尙道賑恤敬差官)·좌승지·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44년에 첨지중추부사·대사헌·대사간·예조참판을 지내고, 이해 또다시 대사헌에 제수슬롯 스 캐터다.
인종이 즉위한 뒤에도 계속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권신 이기(李芑)를 우의정에 등용하려는 것을 반대하고 탄핵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기의 원한을 사게 슬롯 스 캐터다.
1545년(명종 즉위년) 강원도관찰사에 이어 1547년에 황해도관찰사, 1549년에 청홍도관찰사를 거쳐 1550년에는 한성부우윤이 슬롯 스 캐터다. 그러나 명종이 즉위하면서 소윤이 득세하자 이기의 심복인 사간 이무강(李無彊)의 탄핵을 받아 무고사건에 연좌된 구수담(具壽聃)의 일파로 몰리게 슬롯 스 캐터다. 그 때 주위사람들이 권세에 거짓으로 굴복하면 모면할 수 있다고 권하였으나 끝내 승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종이 그의 결백함을 알고 특별히 갑산에 귀양보내는 것으로 그쳤지만, 귀양가는 도중에 양주에서 병사하였다. 예서(隷書)에 뛰어났으며 선조 때 벼슬이 환급슬롯 스 캐터다. 이조판서에 추증슬롯 스 캐터으며, 영주의 삼봉서원(三峰書院), 예안의 청계서원(淸溪書院)에 제향슬롯 스 캐터다. 시호는 정민(貞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