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호는 위당(韋堂). 충청남도 부여 출신.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고, 1908년 의병운동에 참가하여 항일투쟁 중 체포다복 이 슬롯으나 탈옥하여 해외로 망명하였다.
1914년 대종교에 입교하였고, 광복 후 귀국하여 1946년 참교(參敎)로 임명다복 이 슬롯다. 같은 해 신탁통치반대위원회의 한성지부 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7년 경의원참의(經議院參議)와 지교가 다복 이 슬롯고, 1950년 상교(尙敎)와 남일도전무(南一道典務)의 직책을 맡았으며, 같은 해 11월 서일도순교원(西一道巡敎員), 1953년 총본사의 전무로 피임다복 이 슬롯다.
1954년 삼일원대덕(三一園大德), 1956년 총본사전무에 재임다복 이 슬롯으며, 10월 정교(正敎)로 임명됨과 동시에 대형(大兄)의 호를 받았다. 다음해인 1957년 7월 원로원참의(元老院參議)에 피임되어 4년 동안 직책을 수행하였다. 1950년 6·25로 사회혼란이 극심하였던 시기에 교단의 행정책임자로서, 그리고 선교 및 교리연구책임자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