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그마틱 슬롯 체험 이주회 ()

근대사
인물
개항기 경리국장, 군부협판, 군부대신서리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이칭
풍영(豊泳)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43년(헌종 9)
사망 연도
1895년(고종 32)
관련 사건
민비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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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개항기 경리국장, 군부협판, 군부대신서리 등을 역임한 관료.
생애 및 활동사항

자는 풍영(豊泳). 판서 민응식(閔應植)의 가인(家人)으로 명례궁(明禮宮) 장토(庄土)를 8년간 관리하였다. 1881년(고종 18)경 프라그마틱 슬롯 체험에 다녀온 적이 있다. 1895년 1월 영관(領官)으로 병정 600명을 지휘하여 프라그마틱 슬롯 체험군과 합동으로 순천의 동학군을 공격하였다.

이 공적으로 박영효(朴泳孝)가 추천하여 군부감독·경리국장·군부협판이 되고, 군부대신서리를 지냈다. 박영효가 역적혐의로 일본에 망명한 뒤 이 직위에서 물러났다. 프라그마틱 슬롯 체험를 결정한 일본서기관 스기무라[杉村濬]가 대원군파인 이주회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뜻을 알렸다. 을미사변 당일 궁내부와 군부의 고문관이던 오카모토[岡本柳之助]와 함께 대원군을 옹위하며 입궐하였다.

프라그마틱 슬롯 체험 범인으로 붙잡혔고, 그 해 11월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으로 위협을 느낀 김홍집(金弘集)·유길준(兪吉濬) 등 친일파 고위관리들에 의하여 서둘러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주회를 사형시킨 것은 그 범죄보다 그들의 죄상이 밝혀질까 두려워 입을 막기 위한 계책이었다고 한다. 혹은 프라그마틱 슬롯 체험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매천야록(梅泉野錄)』
『프라그마틱 슬롯 체험외교사료(日本外交史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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