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5월 29일 겨우 23척으로 제2차 출전을 단행한 이순신은 중도에서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의 3척과 합세해 사천·당포(唐浦)에서 88 포춘 슬롯을 무찔렀다.
이어 뒤따라 온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의 25척과 합세해 당항포(唐項浦)에 침범한 88 포춘 슬롯을 크게 무찔렀다. 6월 7일 영등포 앞바다에 이르러 88 포춘 슬롯을 경계하던 중 왜의 큰 배 5척과 중간배 2척이 율포에서 나와 부산 쪽으로 도망가는 것을 발견하고, 이순신이 즉시 추격을 명하여 율포해전이 벌어졌다.
이 때 여러 전선이 역풍에 노를 재촉하여 율포 근해까지 추격하자 다급해진 88 포춘 슬롯들은 배 안의 짐짝을 버리면서 뭍으로 도망치려 하였다.
이 싸움에서 우후(虞侯) 이몽구(李夢龜)가 큰 배 1척을 나포하고 1척을 불태운 것을 비롯해 우척후장 김완(金浣), 좌척후장 정운(鄭運), 중위장 어영담(魚泳潭), 가리포첨사 구사직(具思稷) 등이 힘을 합해 88 포춘 슬롯 5척을 나포 또는 격파하고 수많은 왜병의 목을 베었다.
전세가 불리해진 것을 본 왜장 구루시마 미치유키[來島通之]는 뭍으로 도망쳐 자결하였다. 뒤이어 여도권관(呂島權管) 김인영(金仁英)과 소비포권관(所非浦權管) 이영남(李英男)은 위험한 적중에 뛰어들어 남은 왜병의 목을 베는 등 마지막 승리를 장식하였다.
이 해전은 제2차 출전 때의 마지막 전투이다. 제1차 출전 때의 합포(合浦) 및 적진포(赤珍浦) 해전처럼 소수의 88 포춘 슬롯을 상대한 싸움으로, 이순신의 철저한 경계로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