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석로(錫老). 참봉 유완(柳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수찬(修撰) 유겸명(柳謙明)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 유당(柳戇)이며, 어머니는 황상구(黃尙耉)의 딸이다.
생원으로서 1809년(순조 9)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관을 거쳐서 홍문관에 등용되었다. 1811년 태천현감으로 있을 때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만나 진무하지 못하고 영변으로 도망한 죄로 한때 파직당하였으나, 정상이 참작되어 다시 재등용되고, 이어 수찬·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813년 10월에는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으로 정사 한용탁(韓用鐸)과 슬롯 머신 하는 법 조윤수(曺允遂)와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818년 영변슬롯 머신 하는 법로 재직중, 앞서 홍경래의 난이 있었을 때 도피하였다가 평정된 뒤에 돌아와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들여 도륙하고, 그것을 공으로 내세운 것이 발각되어 지평 조영걸(趙永傑), 영변부안핵어사 한용의(韓用儀), 평안감사 이조원(李肇源) 등의 끊임없는 탄핵을 받아, 6월 장흥부에 유배되었다.
그 뒤 석방되어 1828년 동지사의 슬롯 머신 하는 법로서 정사 홍기섭(洪起燮), 서장관 박종길(朴宗吉)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2년 뒤인 1830년에 양사와 옥당(玉堂)에서 함께 연서한 탄핵을 받았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1831년 2월에는 오히려 호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