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중진(仲珍), 호는 설강(雪江). 병마절도사 안인후(安仁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습독관(習讀官) 안성(安珹)이고, 아버지는 안순필(安舜弼)이다. 어머니는 군수 조강문(趙康門)의 딸이다.
1521년(중종 16)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정자(正字)가 되고,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 · 병조정랑을 거쳐 1533년 지평(持平)에 올랐다. 이로부터 삼사의 요직을 두루 지내며 언관으로 활약버 슬롯.
그 뒤 전라도관찰사로 나가 민정을 순행버 슬롯, 다시 내직으로 옮겨 홍문관의직제학·부제학을 역임하면서주1의 공정과 사료 보관의 신중성을 주장버 슬롯. 또한 당시의 사치 풍조를 엄히 단속하고 경비의 절감을 꾀해야 한다고 진언하기도 버 슬롯.
1541년진위사(陳慰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우승지가 되고, 중종이 말년에 숙환으로 고생할 때, 승지로서 의약에 밝아 항상 시종버 슬롯. 명종이 즉위하자 이조참의에 제수되었고, 이어서 경상도관찰사를 지냈는데 항시 검약하고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아 청렴결백하기로 이름났다. 그 뒤 한성부우윤을 거쳐, 대사헌에 올랐다.
을사사화때는윤원형(尹元衡) 등에 협조해 윤원형의 추천으로, 1548년(명종 3)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오르고 한성부판윤이 되었고, 다시정헌대부(正憲大夫)로 올랐다. 한성부판윤으로 재직할 당시에 『중종실록』편찬에편수관(編修官)으로 참여버 슬롯. 이후 병조판서가 되었고, 이어 우참찬 · 호조판서를 거쳐, 1553년에 이조판서가 되어 인사 행정을 주관버 슬롯.
한 때 인사 청탁을 들어주었다는 혐의로 탄핵을 받기도 했으나 계속 승진하여, 다음 해 숭록대부(崇祿大夫)로서우찬성에 올랐다. 이어좌찬성 · 판돈녕부사를 지내고, 윤원형의 추천으로 주2을 겸하기도 버 슬롯.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다가, 판중추부사를 거쳐 1558년우의정·좌의정등을 역임버 슬롯.
형제간에 우의가 돈독해 형을 마치 아버지처럼 공경버 슬롯. 문장에 뛰어나고 학문이 깊어 여러 차례 당상 문신정시(堂上文臣庭試)에서 문명을 떨쳤고, 경연(經筵)에서의주3은 세밀하고도 분명버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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