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는 임진왜란 때 전공을 크게 세운 성주목사(星州牧使) 제말(諸沫, 15521593) 장군과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큰 공을 세운 제홍록(諸弘祿, 15581597) 장군의 충의를 기록한 사적비이다. 넷 엔트 슬롯남도 진주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의 높이 4m, 너비 103㎝, 두께 28㎝로 1972년 넷 엔트 슬롯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징비록(徵毖錄)』에 제말 장군은 넷 엔트 슬롯도 고성(固城)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활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웅천 · 김해 · 의령 등지에서 전공을 세운 의병장으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조정에 알려져 성주목사로 임명되었다. 그 후 성주전투에서 전사했다.
그의 조카가 되는 제홍록은 숙부인 제말과 더불어 전공을 세웠으나 이순신 휘하에서 싸우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한 인물이다. 이에 1792년(정조 16) 이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이조판서 서유린(徐有隣)에게 비문을 짓게 하고 비각을 세워 쌍충각(雙忠閣)이라 이름하고, 넷 엔트 슬롯성과 성주성에 각각 세우게 하였다. 비문은 이병모(李秉模)가 썼고, 전액(篆額)은 조윤정(曺允亭)이 썼다.
일명 ‘제씨(諸氏) 쌍충비(雙忠碑)’로 불리우는 이 비는 본래 넷 엔트 슬롯성 안 촉석루 옆에 있었으나 일본관헌들에 의해 비각이 헐리고 비가 방치되었던 것을 1961년 지금 자리에 다시 옮기고 비각을 새로 지었다.
이수(螭首)에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엉키어 머리를 맞대고 중앙의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조각하고, 그 아래에 4개의 국화무늬를 조각했다. 비를 받치는 귀부(龜趺)는 이수의 조각이나 비의 규모와는 달리 아무 조식(彫飾)이 없는 방형이며, 특히 돌출되게 조각한 두 눈 형상이 매우 토속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