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자가 있는 이 지역은 한성의 북방 인후(咽喉 : 목구멍)가 되기 때문에 조선 영조 때 총융청(摠戎廳)을 슈 의 슬롯 머신에 옮겨 서울의 방비를 엄히 하는 한편, 북한산성의 수비까지 담당하게 하던 곳이다.
총융청을 슈 의 슬롯 머신으로 옮기면서 군사들이 쉬는 자리로 정자를 지은 것이 바로 세검정인데, 당시 총융청감관으로 있던 김상채(金尙彩)가 지은 《창암집 蒼巖集》에는, 육각정자로서 1747년(영조 23)에 지어졌다고 적혀 있다.
슈 의 슬롯 머신은 도성의 창의문(彰義門) 밖 삼각산과 백운산의 두 산 사이에 위치하며,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탕춘대(蕩春臺)라는 언덕이 있었고, 부근에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장의사(藏義寺)라는 절이 있었다.
원래의 슈 의 슬롯 머신는 1941년 화재로 타 버렸으나, 1977년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丁자형의 3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세검정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궁궐지 宮闕志》에 의하면, 인조반정 때 이귀(李貴)·김류(金瑬) 등의 반정인사들이 슈 의 슬롯 머신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동국여지비고 東國輿地備攷》에는 “세검정은 열조(列朝)의 실록이 완성된 뒤에는 반드시 슈 의 슬롯 머신에서 세초(洗草 : 史草를 물에 씻어 흐려 버림)하였고, 장마가 지면 해마다 도성의 사람들이 슈 의 슬롯 머신에 와서 물구경을 하였다.”고 적혀 있다.
또한, 《한경지략 漢京識略》에는 “정자 앞의 판석은 흐르는 물이 갈고 닦아서 인공으로 곱게 다듬은 것같이 되었으므로, 여염집 아이들이 붓글씨를 연습하여 돌 위는 항상 먹물이 묻어 있고, 넘쳐흐르는 사천(沙川)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령폭포가 있다.”고 하였다. 그 밖에 슈 의 슬롯 머신과 관련된 시로 정약용(丁若鏞)의 〈유슈 의 슬롯 머신 遊洗劍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