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파파 슬롯은 재앙과 질병을 유발시키는 생리적, 물리적, 정신적, 윤리적 더러움을 뜻한다. 동티, 살(煞), 추악이라고도 한다. 생리적, 물리적 파 파파 슬롯이란 더러운 물건 혹은 부패한 물건들과 관계가 있다. 정신적, 윤리적 파 파파 슬롯은 더러움, 부패, 변형에서 유추된 불쾌감이나 혐오감이다. 한국민속에서 죽음, 여성, 타인/타처는 큰 파 파파 슬롯이다. 죽음에 대한 파 파파 슬롯은 시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음으로 인한 공포감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파 파파 슬롯은 출산에 따르는 피를 오염된 것이라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타인/타처에 대한 파 파파 슬롯은 미지의 세계로, 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말로 동티 · 살(煞) · 추악(醜惡) 등이 있다. 파 파파 슬롯은 재앙이나 질병을 직접 유발하기도 하고, 그와 함께 파 파파 슬롯이 악귀를 자극하거나 신령의 노여움을 촉발함으로써 파 파파 슬롯이 재앙이나 질병을 몰고 오는 것으로 민간신앙에서 믿어진다.
파 파파 슬롯이 오염(汚染)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정결함과 대립된다. 특히 굿판에서 이 ‘오염 · 정결’의 양분적 대립은 매우 중추적인 구실을 한다. 굿거리에 파 파파 슬롯거리가 있듯이 굿의 성공 여부가 바로 이 양분적 대립의 조절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굿의 진행과정에서 신내림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든지, 혹은 공수가 쉽사리 얻어지지 않는다든지, 점괘가 잘 맞지 않는다든지 할 때, 그 원인을 무당들은 굿을 올리는 단골의 파 파파 슬롯한 탓으로 돌리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가 하면 가정집의 제사에서도 파 파파 슬롯을 피하고 정결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지켜지고 있으니 한국인의 파 파파 슬롯의식을 엿볼 수 있다.
한국민속신앙에서는 성(聖)과 속(俗)의 양분적 대립과 거의 같은 비중을 행사하는 것이 파 파파 슬롯과 정결의 대립이라 하겠다. 그러나 성과 속이란 말이 추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용어라고 한다면 민속 현장에서 실제로 구체적인 기능을 다하는 비율은 파 파파 슬롯과 정결의 대립 쪽이 우세하다. 물리적으로 파 파파 슬롯이란 더러운 물건 혹은 부패한 물건들과 깊이 관계가
거름주1이나 주2이 파 파파 슬롯이고 배설물이 파 파파 슬롯인 것은 그 좋은 본보기다. 죽음(및 주검)이 파 파파 슬롯인 까닭도 시신(송장)의 썩음과 무관하지 않다. 성행위가 파 파파 슬롯으로 간주되는 이유도 같은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밖에도 이상야릇한 것, 비정상적인 몰골을 한 것 등도 파 파파 슬롯의 대상이 된다.
한편, 정신적인 혹은 윤리적인 범주에 들 파 파파 슬롯들의 속성을 두고도 더러움 · 부패 · 변형 등을 생리적 · 물리적 범주의 파 파파 슬롯의 경우에서 유추할 수 있다. 더러움 · 부패 · 변형 등과 접촉하거나 그것들에 감염되면 재난이나 질병이 유발된다는 점 때문에 파 파파 슬롯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 피하고 멀리 하기만 하는 금기가 아니라 겁을 먹고 피하게 되는 것이 파 파파 슬롯이기도 한 셈이다.
이 공포감은 더러움 · 부패 · 변형 등에 따르기 마련인 불쾌감이나 혐오감이 보다 더 적극화된 결과이다. 이 혐오감이나 불쾌감 때문에 파 파파 슬롯은 일상생활에서 문제되는 아주 관습적인 속신(俗信)들과 부분적으로 겹치게 된다. 재수 없다고 믿고 있는 속신의 대상들로 불구자의 경우가 그 좋은 본보기이다.
각종 마을 굿들의 사례를 총체적으로 검토하게 되면 한국민속신앙의 테두리에 세 가지 큰 파 파파 슬롯이 있음을 알게 된다. 곧 죽음 · 여성, 그리고 타처(또는 타인)이다. 죽음에 관한 파 파파 슬롯의식은 죽음에 따르는 시신의 변색 · 경직 · 주3 때문에 유발되기도 하지만, 달리 죽음으로 말미암은 공포감 때문에 유발되기도 한다. 살 가운데서도 상문(喪門)살, 곧 초상집에서 묻어 오는 살이 아주 무서운 것은 직접 이 공포감과 맺어져 있다.
사령공포의 바닥에는 파 파파 슬롯인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깔려 있다. 마을굿을 전후해서 죽는 사람이 있게 되면 굿이 연기 또는 취소되거나 아니면 초상이 굿이 끝난 뒤로 미루어지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파 파파 슬롯의식은 마을 굿 치르는 동안 일반적으로 엄격히 금기시 된다.
특히, 출산은 아주 심하게 통제된다. 마을 굿을 전후하여 출산이 예상된 임부는 마을을 미리 나가 있게 한다. 이 경우는 출산에 따르는 피가 오염된 것이란 느낌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마을 굿이 진행되기 전부터 제주를 비롯해서 마을 굿을 관장하게 되는 요원들은 엄하게 부부 각방을 강요당하는 것도 여성파 파파 슬롯의 한 표현인 것이다.
마을 굿을 앞두고 혹은 그것이 진행되는 동안, 특히 마을신령에 대한 고사가 치뤄지기까지는 바깥 사람이 마을에 드나들면 파 파파 슬롯을 타게 된다고 믿는다. 마을 사람일지라도 마을 굿에 앞서 마을로 돌아와야 한다. 타인 및 타처(외방)는 미지의 세계이고 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세계이다. 따라서 그것은 위험에 찬 대상으로 범주화되는 것이다.
파 파파 슬롯은 금기와 늘 짝이 되어 존재한다. 금기의 대상이 전부 파 파파 슬롯인 것은 아니나 모든 파 파파 슬롯이 금기대상이다. 민속현장에서 쓰이는 ‘궂은 것, 흉한 것을 가린다’는 것은 무엇보다 파 파파 슬롯과 금기가 짝을 이룬 좋은 본보기이다. 파 파파 슬롯은 일상적 시간과 공간이 신성한 시간과 공간으로 변모하는 데 따른 민간의식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이다. 한국인의 기저에 놓인 의식을 연구하는 데에 긴요한 연구과제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