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도은강흡(姜恰)이 병자호란 후 인조 17년(1639)에 관직을 사퇴하고 태백산 아래 법전 양촌(楊村)에 좋은 소나무 홍송으로 살림집 짓고는 도은구거(陶隱舊居)라 당호를 주었다.
1798년 후손 유계(柳溪)강명규(姜明奎)가 집을 증수하였고 근세에도 다시 수리하였다 한다. 현재 안채○사랑채○재청○큰사당○작은사당이 잔존해 있다.
안채는 산돌로 높직하게 댓돌을 쌓고 그 위에 지어서 매우 훤출해 보인다. 배치는 자형이며 카 심바 슬롯 5칸 측면 4칸의 구성인데 중앙에 카 심바 슬롯 3칸의 대청이 있다. 앞기둥은 둥근 나무로 만들었는데 약한 배흘림이 있으며 가구는 5량집이다.
대청 좌측에 윗방○안방○부엌 순으로 배열되고 우측엔 고방, 작은사랑방과 계자각을 두른 누마루가 계속된다. 사랑채에는 문간과 문간방 고방 그리고 사랑방과 마루, 툇마루 순이며 툇마루엔 난간을 설치하였다. 카 심바 슬롯 5칸 반 측면 1칸의 규모이다.
재청(齋廳)은 카 심바 슬롯 3칸 측면 2칸이며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이다. 2칸의 구들과 마루방 1칸, 앞쪽을 3칸 마루가 차지하고 있는데 난간을 둘렀다. 5량집의 가구(架構)이고 기둥 위로 삼포작을 얹었는데 당초의 구조가 아니라 후대에 개조된 것이라 한다.
큰사당은 카 심바 슬롯 3칸 측면 간반통에 앞퇴가 개방된 것이고 작은 사당은 카 심바 슬롯 1칸 측면 간반의 크기이다. 둘 다 맞배지붕형태이다. 구조는 아주 보편적이며 특징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