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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경상좌도우후, 양주목사, 공청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자명(子明)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04년(선조 37)
사망 연도
1657년(효종 8)
본관
성주(星州)
주요 관직
경상좌도우후|양주목사|공청도병마절도사
관련 사건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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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경상좌도우후, 양주목사, 공청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명(子明). 아버지는 공조참판 배흥립(裵興立)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0년(인조 8) 무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에 이르렀으나 1635년 모친상을 당하여 사직, 다음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상좌도병피망 슬롯 pc도사 민영(閔泳)의 군문에서 종군하다가, 민영이 패사하자 그를 대신하여 근왕병을 이끌고 충주에 이르렀으나 호란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해산하였다.

1638년 숙천부사, 이어 경상좌도우후를 거쳐 양주목사로 있을 때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에 녹훈되었고, 1645년 공청도병피망 슬롯 pc도사로 삼았다. 공청병사로 재직 중이던 1646년, 공청도(公淸道: 지금의 충청도) 이산(尼山) 등지에서 안익신(安益信) 등이 주도하여 변란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는 지적에 따라 삭직되었다. 1649년(효종 즉위) 평안도병피망 슬롯 pc도사로 복직되었고, 1651년(효종 2) 경기도수군절도사·포도대장을 거쳐, 1657년(효종 8) 전라도병피망 슬롯 pc도사로 재직 중 장수현(長水縣)에서 죽었다. 무인이면서도 양반의 법도를 지키고 행동을 절제하였으며, 스스로 욕심을 버리고 근신하여 여러 고을을 다스리면서도 부정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일이 없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기언(記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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