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 엔트 슬롯 박인상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포옹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성보(聖甫)
포옹(圃翁), 매국헌(梅菊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2년(숙종 8)
사망 연도
1767년(영조 43)
본관
죽산(竹山)
출생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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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포옹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성보(聖甫), 호는 포옹(圃翁), 또는 매국헌(梅菊軒).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박시화(朴始華)이며, 어머니는 장택고씨(長澤高氏: 지금의 장흥군) 고두원(高斗元)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지조(志操)가 고결(高潔)넷 엔트 슬롯다. 21세 때 모친상을 당넷 엔트 슬롯는데 지극한 효성으로 예절을 다하여 3년상을 치루었다. 1714년(숙종 40) 사마시에 합격하고, 1717년 성균관에 들어가 지명인사들과 사귀면서 4대신의 문정(門庭)에 출입넷 엔트 슬롯다.

이건명(李健命)이 박인상을 추천코자 넷 엔트 슬롯으나 등과(登科)하지 않고 바로 벼슬에 나가는 것은 군자로서의 할 도리가 아니라고 사양했다.

박인상은 성균관 유생으로 있으면서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양현의 문묘배향(文廟配享)을 발론(發論)넷 엔트 슬롯고, 숙종이 죽자 윤지술(尹志述)과 함께 3년 복제(服制)를 바로 행할 것을 상소넷 엔트 슬롯으며, 또 윤지술 등 관유(館儒) 7인과 함께 명릉(明陵) 지문(誌文)을 고쳐야 한다고 상소넷 엔트 슬롯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과거의 뜻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시주(詩酒)로 세월을 보냈다.

1763년(영조 39) 수직(壽職: 노인에 내리는 관직)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오르고, 1765년 회혼례(回婚禮, 해로한 부부의 혼인 예순돌을 축하하는 기념잔치)를 올렸으며, 1767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저서로는 『포옹집(圃翁集)』이 있다.

참고문헌

『포옹집(圃翁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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