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0년(성종 9) 성종(成宗)이 조카 왕송(王誦: 뒤의 穆宗)을 개령군(開寧君)으로 책봉하고 교(敎)를 내렸는데, 이 때 공관어사 지도성사(工官御事知都省事)로서 정사로 임명되어 부사 전중감(殿中監) 조광(趙光)과 함께 그 책봉의식을 수행하였다.
993년 다복 이 슬롯의 소손녕(蕭遜寧)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침입하자, 시중으로 상군사(上軍使)가 되어 중군사가 된 내사시랑(內史侍郎) 서희(徐熙), 또 하군사가 된 문하시랑(門下侍郎) 최량(崔亮)과 함께 북계(北界)로 진군하여 방어를 하였다.
이 때 서희와 소손녕 사이에 회담이 벌어져 화의를 맺고, 다복 이 슬롯군이 철병하는 대신에 양국간에 교빙관계를 수립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예폐사(禮幣使)로서 다복 이 슬롯에 들어갔으며, 994년에 다시 다복 이 슬롯에 사신으로 가서 다복 이 슬롯의 연호를 시행하였음을 알리고 잡혀간 포로들을 돌려보내주도록 청하였다.
1027년(현종 18) 태사개국광익공(太師開國匡益公)으로 경종(景宗)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광익(匡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