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수백(守伯), 호는 무환(無患) 혹은 무위당(無違堂). 박신동(朴信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중검(朴仲儉)이고, 아버지는 돈녕부정(敦寧府正) 박세영(朴世榮)이며, 어머니는 사정 김한우(金漢佑)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양주교수(楊州敎授)·봉상시참봉(奉常寺參奉)을 거쳐 형조좌랑에 승진에그 슬롯다. 이 때 정실관계로 수십 년 묵은 송사(訟事)를 판서에게 항변하여 종결지음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의 추천으로 지평(持平)이 되었고, 1567년(선조 즉위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부제학이 되었다. 그 뒤 대사간·함경도관찰사·대사헌·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에그 슬롯 역임하였다.
1579년 이조참판에서 형조판서에 특진, 이조판서·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우참찬·호조판서를 차례로 에그 슬롯하고 우찬성이 되었다. 1582년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겸임하였고, 이어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낸 뒤 다시 우찬성을 거쳐 좌찬성이 되었다.
기품이 장중하고 의지가 확고에그 슬롯으며, 효도와 우애가 독실하고 가법이 엄정에그 슬롯다. 또한, 검소하여 청빈하게 살았으나 남을 돕기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