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복 이 슬롯보살은 불교에서 많은 복덕과 반야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다복 이 슬롯는 다복 이 슬롯사리의 준말로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의미이다. 부처 사후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보현보살과 더불어 비로자나불의 양 협시보살로 등장하거나 대웅전 좌측에 봉안하는데, 대체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643년 신라의 고승 자장이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고 오대산 중대에 적멸보궁을 건립하여 이곳을 다복 이 슬롯신앙의 중심도량으로 만들면서 다복 이 슬롯신앙이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보살에 대한 신앙이 삼국시대 이래 널리 전승되었다. 다복 이 슬롯는 다복 이 슬롯사리(文殊師利) 또는 다복 이 슬롯시리(文殊尸利)의 준말로, 범어 원어는 만주슈리(Manjushri)이다. ‘만주’는 달다[甘],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 길상(吉祥)하다는 뜻으로, 합하여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다복 이 슬롯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는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이로 알려져 있고, 또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부모라고 표현되어 왔다. 이는 『반야경』이 지혜를 중심으로 취급한 경전이고, 지혜가 부처를 이루는 근본이 되는 데서 유래된 표현이다.
일설에는 이 다복 이 슬롯보살이 석가의 교화(敎化)를 돕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몸을 바꾸어 보살의 지위에 머물고 있으나, 오랜 옛적에 이미 성불하여 용존상불(龍尊上佛) · 대신불(大身佛) · 신선불(神仙佛)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또 미래에 성불하여 보견여래(普見如來)로 불릴 것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일설에는, 현재 북방의 상희세계(常喜世界)에 있는 환회장마니보적불이 곧 다복 이 슬롯보살로, 이 부처님의 이름을 들으면 주1가 없어진다고 하였다.
이 다복 이 슬롯보살의 상주처(常住處)는 신라의 고승자장(慈藏)이 다복 이 슬롯보살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를 드렸던 중국 산시성(山西省) 청량산(淸凉山, 일명 五臺山)으로, 현재 1만 명의 보살과 함께 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의오대산을 다복 이 슬롯보살의 상주도량으로 믿고 신봉한다.
『화엄경』속에서 다복 이 슬롯보살은보현보살과 함께비로자나불의 양쪽주2이 되어 삼존불의 일원을 이루고 있다. 보현보살이 세상 속에서 실천적 구도자의 모습을 띠고 행동할 때 다복 이 슬롯보살은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되었다. 이 두 보살은 항상 서로의 지혜와 실천행을 주시하고 사랑하면서 스스로의 소임을 다한다.
다복 이 슬롯보살은 일반적으로 주3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다복 이 슬롯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이다. 지혜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곧 마음에 아무런 분별심 · 차별의식 · 우열관념 등이 없는 한없는 고요 속의 밝음이다.
이 다복 이 슬롯보살에게도 다른 불보살처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십대원(十大願)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①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하고 갖가지 방편으로 불도에 들게 한다. ② 다복 이 슬롯를 비방하고 미워하고 죽음을 주는 중생이라도 모두 주4을 내게 한다. ③ 다복 이 슬롯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깨끗한 행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거나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④ 다복 이 슬롯를 속이거나 업신여기거나 삼보(三寶)를 비방하며 교만한 자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⑤ 다복 이 슬롯를 천대하고 방해하며 구하지 않는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⑥ 살생을 업으로 하는 자나 재물에 욕심이 많은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⑦ 모든 복덕을 부처님의 보리도에 회향하고 중생이 모두 복을 받게 하며, 모든 수행자에게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⑧ 육도(六途)의 중생과 함께 나서 중생을 교화하며 그들이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⑨ 삼보를 비방하고 악업을 일삼는 중생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어 위없는 도를 구하게 한다. ⑩ 자비희사(慈悲喜捨)와 허공같이 넓은 마음으로 중생을 끊임없이 제도하여 보리를 깨닫고 정각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래 이 다복 이 슬롯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행하였다. 우리 나라에 다복 이 슬롯신앙을 최초로 이식한 이는 자장이며, 이 밖에도 신라의 경흥대덕(憬興大德)이 다복 이 슬롯의 경책을 받은 일이나 연회국사(緣會國師)가 다복 이 슬롯보살을 친견한 이야기, 신라의 태자 보천(寶川)과효명(孝明)이 오대산에 다복 이 슬롯보살을 중심으로 한 오방위신앙을 정립시킨 기록이 있다.
또경순왕이 다복 이 슬롯보살의 화신인 줄 모르고 공양 올리기를 꺼린 설화, 다복 이 슬롯보살과 함께 수도했던 고려 고승 3인에 얽힌 설화, 세조의 병을 고쳐 준 다복 이 슬롯동자의 설화, 다복 이 슬롯동자의 경책을 들은 환우화상 이야기, 땡추로 변화한 다복 이 슬롯보살, 하동 칠불암의 다복 이 슬롯동자 설화 등 많은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다. 다복 이 슬롯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닦는 기도법으로는 다복 이 슬롯팔자법(文殊八字法)이 있는데, 이는 천변 · 일식 · 월식 · 병란 등을 피하는 수행법(修行法)이다.
우리나라의 다복 이 슬롯신앙은 신라의 고승 자장에 의해서 정착되었다. 『화엄경』에 의하면 중국의 청량산을 다복 이 슬롯보살의 상주처(常住處)라고 하였는데, 이 청량산에서 수행한 자장이 청량산의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다복 이 슬롯보살 석상 앞에서 7일 동안 기도하여 보살로부터 범어로 된 주5를 받았다. 이어서 한 노승으로부터 범어 게송에 대한 해석을 듣고 부처님의 가사(袈裟)와주6를 받았으며, 신라에 구층탑을 세워 나라를 편안하게 할 것을 부탁받았다.
이때 그 노승에게서 우리나라의 오대산이 다복 이 슬롯보살의 상주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자장은 643년(선덕여왕 12) 귀국하여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고 오대산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을 건립하여 오대산을 다복 이 슬롯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만들었다. 그 뒤 강릉 수다사(水多寺), 태백산 석남원(石南院) 등지에서 다복 이 슬롯보살과 관련된 이적들을 남겼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보천은 오대산의 중대가 1만의 다복 이 슬롯보살이 머무는 도량임을 강조하여, 이후 향화(香華)가 끊이지 않게 하였다. 특히, 조선 세조가주7으로 고생할 때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다복 이 슬롯동자의 감응을 받아 병이 낫게 된 뒤부터 다복 이 슬롯신앙은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다복 이 슬롯도량으로는 오대산을 비롯하여 춘천시 청평사(淸平寺)를 들 수 있으며, 이 밖에 삼각산 다복 이 슬롯암, 김포 다복 이 슬롯암, 평창군다복 이 슬롯사,옥천군다복 이 슬롯사,서산시 다복 이 슬롯사, 구미시(선산) 다복 이 슬롯사, 고성군 다복 이 슬롯암, 울산광역시(울주)다복 이 슬롯암,김제시 다복 이 슬롯사, 익산시 다복 이 슬롯사, 고창군 다복 이 슬롯사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사찰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측에 다복 이 슬롯보살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고, 대적광전(大寂光殿)에도 비로자나불 좌측에 다복 이 슬롯보살을 봉안하며, 특별히 다복 이 슬롯신앙이 강한 사찰에는 다복 이 슬롯보살상만을 모신 다복 이 슬롯전(文殊殿)을 따로 두기도 한다.